“니간타 벗들이여, 그대들은 이미 소진한 괴로움이 얼마인지, 아직 소진해야 할 괴로움이 얼마인지, 얼마를 소진하면 모든 괴로움이 소진될지 압니까?” “아닙니다, 벗이여.” “니간타 벗들이여, 그대들은 이 현세에서 해로운 것을 버리고 이로운 것을 얻는 일을 압니까?” “아닙니다, 벗이여.”
‘Kiṁ pana tumhe, āvuso nigaṇṭhā, jānātha—ettakaṁ vā dukkhaṁ nijjiṇṇaṁ, ettakaṁ vā dukkhaṁ nijjīretabbaṁ, ettakamhi vā dukkhe nijjiṇṇe sabbaṁ dukkhaṁ nijjiṇṇaṁ bhavissatī’ti? ‘No hidaṁ, āvuso’. ‘Kiṁ pana tumhe, āvuso nigaṇṭhā, jānātha—diṭṭheva dhamme akusalānaṁ dhammānaṁ pahānaṁ, kusalānaṁ dhammānaṁ upasampadan’ti? ‘No hidaṁ, āvuso’.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배경
후속 두 물음은 고행의 진행 상태와 현재의 윤리적 변화를 검증합니다. 세존은 이미 소진한 고통, 아직 소진해야 할 고통, 모든 고통이 소진되는 총량을 아는지 묻습니다. 니간타들은 모른다고 답합니다. 다음으로 이 현세에서 해로운 성품을 버리고 이로운 성품을 얻는 것을 아는지 묻지만, 역시 모른다고 답합니다. 이로써 과거 업을 고행으로 없앤다는 주장의 과거·양·현재 결과에 대한 다섯 지식 물음이 모두 부정 답변으로 끝납니다.
묵상
어떤 방법이 고통을 줄인다고 할 때, 진전의 양과 남은 분량을 알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 해로운 것은 줄고 이로운 것은 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결과를 알 수 있는 표지가 없다면 그 주장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