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니간타 벗들이여, 세상의 폭력적이고 피 묻은 손으로 잔혹한 일을 하던 이들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니간타로 출가한단 말입니까?” “고따마 벗이여, 행복은 행복으로 얻지 못하고 괴로움으로 얻습니다. 고따마 벗이여, 행복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마가다의 세니야 빔비사라 왕이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그가 고따마 존자보다 더 행복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Evaṁ sante, āvuso nigaṇṭhā, ye loke luddā lohitapāṇino kurūrakammantā manussesu paccājātā te nigaṇṭhesu pabbajantī’ti? ‘Na kho, āvuso gotama, sukhena sukhaṁ adhigantabbaṁ, dukkhena kho sukhaṁ adhigantabbaṁ; sukhena cāvuso gotama, sukhaṁ adhigantabbaṁ abhavissa, rājā māgadho seniyo bimbisāro sukhaṁ adhigaccheyya, rājā māgadho seniyo bimbisāro sukhavihāritaro āyasmatā gotamen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배경
세존은 알 수 없는 과거 업을 현재의 고행으로 역산하면, 세상에서 폭력적이고 피 묻은 손으로 잔혹한 일을 하던 이들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니간타로 출가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니간타 수행자들은 그 물음에 행복과 고통에 관한 주장으로 답합니다. ‘고따마 벗이여’라는 호격을 두 번 사용하며 행복은 행복으로 얻지 못하고 고통으로 얻는다고 말하고, 행복으로 행복을 얻는다면 빔비사라 왕이 고따마 존자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듭니다. 이는 니간타들의 말이지 세존이 승인한 결론이 아닙니다.
묵상
행복을 얻으려면 반드시 고통을 거쳐야 한다는 말은 강한 노력을 설명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양이 바로 행복의 깊이를 보장할까요? 빔비사라 왕과 세존을 비교하려면 먼저 행복을 무엇으로 측정할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