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고따마 벗이여, 우리가 성급하고 생각 없이 ‘고따마 벗이여, 행복은 행복으로 얻지 못하고 괴로움으로 얻습니다. 고따마 벗이여, 행복으로 얻을 수 있다면 빔비사라 왕이 행복을 얻고 고따마 존자보다 더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그대로 두고, 이제 고따마 존자께 묻겠습니다. ‘존자들 중 누가 더 행복하게 삽니까? 빔비사라 왕입니까, 고따마 존자입니까?’”
Addhāvuso gotama, amhehi sahasā appaṭisaṅkhā vācā bhāsitā, na kho, āvuso gotama, sukhena sukhaṁ adhigantabbaṁ, dukkhena kho sukhaṁ adhigantabbaṁ; sukhena cāvuso gotama, sukhaṁ adhigantabbaṁ abhavissa, rājā māgadho seniyo bimbisāro sukhaṁ adhigaccheyya, rājā māgadho seniyo bimbisāro sukhavihāritaro āyasmatā gotamenāti. Api ca tiṭṭhatetaṁ, idānipi mayaṁ āyasmantaṁ gotamaṁ pucchāma: “ko nu kho āyasmantānaṁ sukhavihāritaro rājā vā māgadho seniyo bimbisāro āyasmā vā gotamo”ti?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배경
니간타들은 세존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이전 말을 전체로 다시 인용합니다. 호격 ‘고따마 벗이여’는 이 부분에서 세 번 나옵니다. 그들은 그 말이 성급하고 생각 없이 나왔음을 인정한 뒤, 일단 그 주장을 두고 질문을 바로잡습니다. 빔비사라 왕과 고따마 존자 중 누가 더 행복하게 사는지를 세존에게 직접 묻습니다. 답은 감각적 편의의 양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거나 말하지 않고도 완전한 행복에 머물 수 있는 기간으로 검증됩니다.
묵상
자신의 주장이 성급했음을 알았을 때, 그 주장을 방어하는 대신 물음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니간타들은 자신들의 이전 말을 숨기지 않고 다시 밝힌 뒤 비교 기준을 묻습니다. 주장을 수정하는 태도와 질문의 정확성 중 어느 쪽이 더 눈에 들어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