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니간타 벗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되묻겠습니다. 그대들이 좋은 대로 답하십시오. 니간타 벗들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마가다의 세니야 빔비사라 왕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채 일곱 낮밤 동안 오로지 행복만 느끼며 머물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벗이여.”
Tena hāvuso nigaṇṭhā, tumheva tattha paṭipucchissāmi, yathā vo khameyya tathā naṁ byākareyyātha. Taṁ kiṁ maññathāvuso nigaṇṭhā, pahoti rājā māgadho seniyo bimbisāro, aniñjamāno kāyena, abhāsamāno vācaṁ, satta rattindivāni ekantasukhaṁ paṭisaṁvedī viharitun’ti? ‘No hidaṁ, āvuso’.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배경
세존은 빔비사라 왕과 자신의 행복을 감각적 편의의 양으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먼저 니간타들에게 좋은 대로 답하라고 하고, 왕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며 말도 하지 않은 채 일곱 낮밤 동안 오로지 행복만 느끼며 머물 수 있는지 묻습니다. 호격 ‘니간타 벗들이여’는 도입과 질문에서 두 번, 답의 ‘벗이여’는 한 번 나옵니다. 니간타들은 왕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답합니다. 일주일이라는 수량과 몸·말의 두 조건, 오로지 행복이라는 상태가 비교의 기준입니다.
묵상
많은 대상을 누리는 즐거움과, 외부 활동 없이도 오래 지속되는 행복은 같은 능력일까요? 세존이 제시한 일곱 낮밤·몸의 정지·말의 정지·완전한 행복이라는 네 조건은 행복을 평가하던 기준을 어떻게 바꾸어 놓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