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간타 벗들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마가다의 세니야 빔비사라 왕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채 엿새 낮밤 … 다섯 낮밤 … 네 낮밤 … 세 낮밤 … 두 낮밤 … 하루 동안 오로지 행복만 느끼며 머물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벗이여.”
‘Taṁ kiṁ maññathāvuso nigaṇṭhā, pahoti rājā māgadho seniyo bimbisāro, aniñjamāno kāyena, abhāsamāno vācaṁ, cha rattindivāni …pe… pañca rattindivāni … cattāri rattindivāni … tīṇi rattindivāni … dve rattindivāni … ekaṁ rattindivaṁ ekantasukhaṁ paṭisaṁvedī viharitun’ti? ‘No hidaṁ, āvuso’.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배경
일곱 낮밤에 대한 부정 답변 뒤, 세존은 같은 조건을 엿새에서 하나까지 줄입니다. 원문은 엿새 낮밤 뒤에 …pe…를 두고, 다섯·네·세·두 낮밤 뒤에는 각각 …를 둡니다. 하루의 문장은 축약 없이 완결됩니다. 한국어도 엿새 낮밤 …pe… 다섯 낮밤 … 네 낮밤 … 세 낮밤 … 두 낮밤 … 하루의 같은 종류·순서·수량을 보존합니다. 니간타들은 하루에 대해서도 빔비사라 왕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답합니다.
묵상
기간을 일주일에서 하루로 줄였는데도 답은 “아니요”입니다. 이 답은 빔비사라 왕의 편의가 부족하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외부 활동 없이 완전한 행복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이 다른 차원임을 드러내나요? 수량을 줄이는 물음이 비교 기준을 어떻게 선명하게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