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간타 벗들이여, 나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루 동안 오로지 행복만 느끼며 머물 수 있습니다. 니간타 벗들이여, 나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채 이틀 … 사흘 … 나흘 … 닷새 … 엿새 … 일곱 낮밤 동안 오로지 행복만 느끼며 머물 수 있습니다.”
‘Ahaṁ kho, āvuso nigaṇṭhā, pahomi aniñjamāno kāyena, abhāsamāno vācaṁ, ekaṁ rattindivaṁ ekantasukhaṁ paṭisaṁvedī viharituṁ. Ahaṁ kho, āvuso nigaṇṭhā, pahomi aniñjamāno kāyena, abhāsamāno vācaṁ, dve rattindivāni … tīṇi rattindivāni … cattāri rattindivāni … pañca rattindivāni … cha rattindivāni … satta rattindivāni ekantasukhaṁ paṭisaṁvedī viharituṁ.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배경
빔비사라 왕에 대한 물음은 일곱에서 하나로 기간을 줄였지만, 세존의 답은 하나에서 일곱으로 기간을 늘립니다. 하루 문장은 축약 없이 시작하고, 이틀·사흘·나흘·닷새·엿새 뒤에는 원문처럼 각각 …를 둡니다. 일곱 낮밤의 문장은 다시 완전히 밝힙니다. 세존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말을 하지 않은 채 각 기간 동안 오로지 행복만 느끼며 머물 수 있다고 일인칭으로 밝힙니다. 이 말은 니간타들의 고행 주장이 아니라, 세존이 자신의 능력을 직접 대조한 답입니다.
묵상
행복을 외부 자극의 수와 강도로만 측정했다면, 아무 움직임과 말 없이도 오래 머물 수 있는 행복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세존의 일인칭 진술은 고통을 커지게 하는 길과 달리, 고요함 속에서 행복이 지속될 수 있다는 어떤 다른 비교 기준을 제시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