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이 수행자 승가는 이와 같고, 수행자들이여, 이 모임도 이와 같느니라. 이런 모임에 조금 주면 많아지고, 많이 주면 더욱 많아지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 수행자 승가는 이와 같고, 수행자들이여, 이 모임도 이와 같느니라. 이런 모임은 세상에서 보기 드물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 수행자 승가는 이와 같고, 수행자들이여, 이 모임도 이와 같느니라. 양식을 메고 여러 유순을 가서라도 볼 만하느니라.”
Tathārūpo ayaṁ, bhikkhave, bhikkhusaṅgho; tathārūpā ayaṁ, bhikkhave, parisā yathārūpāya parisāya appaṁ dinnaṁ bahu hoti, bahu dinnaṁ bahutaraṁ. Tathārūpo ayaṁ, bhikkhave, bhikkhusaṅgho; tathārūpā ayaṁ, bhikkhave, parisā yathārūpā parisā dullabhā dassanāya lokassa. Tathārūpo ayaṁ, bhikkhave, bhikkhusaṅgho; tathārūpā ayaṁ, bhikkhave, parisā yathārūpaṁ parisaṁ alaṁ yojanagaṇanāni dassanāya gantuṁ puṭosenāpi.
맛지마 니까야 MN 118 들숨날숨경 (Ānāpānasatisutta)배경
공양받을 가치에 이어 같은 도입문이 세 번 반복됩니다. 첫째는 적은 보시가 많아지고 많은 보시가 더욱 많아진다는 두 단계, 둘째는 세상에서 보기 드물다는 희소성, 셋째는 puṭosa, 길 양식을 메고 여러 유순을 걸어서라도 볼 가치입니다. “이 수행자 승가”와 “이 모임”을 매번 다시 말하므로 한국어도 여섯 호격을 줄이지 않았습니다. 보시의 크기만 강조하는 문장이 아니라, 다음에 드러날 성취와 수행을 갖춘 공동체를 만나는 가치가 얼마나 큰지 세 방향으로 설명합니다.
묵상
조금 준 것이 많아지고, 보기 드물며, 먼 길을 갈 만하다는 세 설명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가까이 들리나요? 무언가를 실제로 내놓으라는 요구는 아니에요. 귀하게 여기는 공동체의 성질 하나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