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이 승가에는 번뇌를 다하고 청정한 삶을 완성했으며,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참된 목적에 이르렀고 존재의 족쇄를 다해 바른 완전한 앎으로 해탈한 아라한 수행자들이 있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 승가에는 이런 수행자들도 있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 승가에는 다섯 낮은 족쇄를 다해 저절로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는 수행자들이 있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 승가에는 이런 수행자들도 있느니라.”
Santi, bhikkhave, bhikkhū imasmiṁ bhikkhusaṅghe arahanto khīṇāsavā vusitavanto katakaraṇīyā ohitabhārā anuppattasadatthā parikkhīṇabhavasaṁyojanā sammadaññāvimuttā—evarūpāpi, bhikkhave, santi bhikkhū imasmiṁ bhikkhusaṅghe. Santi, bhikkhave, bhikkhū imasmiṁ bhikkhusaṅghe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ā tattha parinibbāyino anāvattidhammā tasmā lokā—evarūpāpi, bhikkhave, santi bhikkhū imasmiṁ bhikkhusaṅghe.
맛지마 니까야 MN 118 들숨날숨경 (Ānāpānasatisutta)배경
모임의 알맹이를 밝히는 첫 두 성취입니다. 아라한은 번뇌를 다함부터 바른 완전한 앎으로 해탈함까지 여덟 표현으로 설명되고, 어느 하나도 대표어로 줄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수행자들은 다섯 낮은 족쇄의 소멸, 저절로 태어남,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음의 네 관계로 불환의 성취를 이룹니다. 각 목록 뒤에는 “이 승가에는 이런 수행자들도 있다”가 따로 반복됩니다. 완전한 해탈과 돌아오지 않음이라는 서로 다른 결과를 한 단계로 합치지 않습니다.
묵상
“짐을 내려놓음”과 “돌아오지 않음”은 서로 다른 성취를 가리키지만 어느 표현이 지금 더 또렷하게 들리나요? 자신의 단계와 비교할 필요는 없어요. 두 목록이 구별되어 있다는 사실만 천천히 읽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