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숨날숨을 몸 가운데 한 몸으로 보다

첫 네 호흡 조건에서 몸을 관찰하며, 들숨날숨이 몸 가운데 한 몸이기 때문이라고 밝히십니다.

“수행자들이여, 들숨날숨 알아차림을 어떻게 닦고 많이 수행해야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이 원만해지는가?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 수행자들이여, 그때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불만을 버리고 머무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나는 들숨날숨을 몸들 가운데 한 몸이라고 말하느니라.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그때 수행자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불만을 버리고 머무느니라.”

Kathaṁ bhāvitā ca, bhikkhave, ānāpānassati kathaṁ bahulīkatā cattāro satipaṭṭhāne paripūreti? Yasmiṁ samaye, bhikkhave, bhikkhu … kāye kāyānupassī, bhikkhave, tasmiṁ samaye bhikkhu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Kāyesu kāyaññatarāhaṁ, bhikkhave, evaṁ vadāmi yadidaṁ—assāsapassāsā. Tasmātiha, bhikkhave, kāye kāyānupassī tasmiṁ samaye bhikkhu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맛지마 니까야 MN 118 들숨날숨경 (Ānāpānasatisutta)

배경

들숨날숨 알아차림이 네 확립을 어떻게 원만하게 하는지 묻는 질문과 첫 답을 함께 두었습니다. 답의 긴 숨·짧은 숨·온몸 경험·몸의 형성 작용 가라앉힘은 앞에서 들숨과 날숨, 앎과 익힘을 모두 온전히 제시했습니다. 양언어의 편집 일반 말줄임표 하나는 mn118:24.1의 조건 시작부터 24.4까지 그 반복만 생략하며 새 항목은 없습니다. 같은 문장 안에서 몸을 관찰하며 열심·분명한 앎·알아차림을 갖추고 세상의 탐욕과 불만을 버립니다. 세존은 들숨날숨이 몸들 가운데 한 몸이라고 이유를 밝힌 뒤 같은 결과를 반복합니다.

묵상

들숨날숨이 “몸 가운데 한 몸”이라는 설명은 어떻게 들리나요? 몸 전체를 한꺼번에 느끼지 못해도 괜찮아요. 한 번의 들숨이나 날숨이 몸에서 일어나는 한 작용으로 느껴지는지 가볍게 물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