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과 분명한 앎 없이 호흡 알아차림은 없다

셋째 네 호흡 조건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알아차림을 잊고 분명히 알지 못하면 들숨날숨 알아차림이 아니라고 밝히십니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 수행자들이여, 그때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불만을 버리고 머무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나는 알아차림을 잊고 분명히 알지 못하는 이에게 들숨날숨 알아차림이 있다고 말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그때 수행자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불만을 버리고 머무느니라.”

Yasmiṁ samaye, bhikkhave, bhikkhu … citte cittānupassī, bhikkhave, tasmiṁ samaye bhikkhu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Nāhaṁ, bhikkhave, muṭṭhassatissa asampajānassa ānāpānassatiṁ vadāmi. Tasmātiha, bhikkhave, citte cittānupassī tasmiṁ samaye bhikkhu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맛지마 니까야 MN 118 들숨날숨경 (Ānāpānasatisutta)

배경

조건절의 마음 경험·기쁘게 함·집중·해방은 앞에서 각 들숨과 날숨의 여덟 익힘으로 온전히 제시했습니다. 양언어의 편집 일반 말줄임표 하나는 mn118:26.1의 조건 시작부터 26.4까지 그 반복만 생략하며 새 항목은 없습니다. 같은 문장 안에서 마음 관찰의 결과가 이어지고, 세존은 알아차림을 잊은 사람과 분명히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들숨날숨 알아차림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부정합니다. 그러므로 열심·분명한 앎·알아차림과 탐욕·불만의 버림을 갖춘 마음 관찰이 다시 반복됩니다.

묵상

“알아차림을 잊음”과 “분명히 알지 못함”이 따로 언급된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 집중이 흐트러졌다고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흐트러짐을 알아차린 순간 자체가 어떤 느낌인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