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을 지혜로 보고 평온히 지켜보다

마지막 네 호흡 조건에서 마음에 나타나는 것들을 관찰하며, 탐욕과 불만의 버림을 지혜로 보고 평온히 지켜봅니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 수행자들이여, 그때 마음에 나타나는 것들에서 그것들을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불만을 버리고 머무느니라. 그는 탐욕과 불만의 버림을 지혜로 보고, 그것을 잘 평정히 지켜보느니라.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그때 수행자는 마음에 나타나는 것들에서 그것들을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불만을 버리고 머무느니라.”

Yasmiṁ samaye, bhikkhave, bhikkhu … dhammesu dhammānupassī, bhikkhave, tasmiṁ samaye bhikkhu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So yaṁ taṁ abhijjhādomanassānaṁ pahānaṁ taṁ paññāya disvā sādhukaṁ ajjhupekkhitā hoti. Tasmātiha, bhikkhave, dhammesu dhammānupassī tasmiṁ samaye bhikkhu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맛지마 니까야 MN 118 들숨날숨경 (Ānāpānasatisutta)

배경

조건절의 무상·빛바램·소멸·놓아 버림 관찰은 앞에서 각 들숨과 날숨의 여덟 익힘으로 온전히 제시했습니다. 양언어의 편집 일반 말줄임표 하나는 mn118:27.1의 조건 시작부터 27.4까지 그 반복만 생략하며 새 항목은 없습니다. 같은 문장 안에서 마음에 나타나는 것들을 열심·분명한 앎·알아차림으로 관찰하고 탐욕과 불만을 버리는 결과가 이어집니다. 수행자는 그 버림을 지혜로 보고 잘 평온히 지켜보며, 그러므로 같은 넷째 관찰이 성립한다고 다시 온전히 말합니다.

묵상

탐욕과 불만의 버림을 “지혜로 보고 평온히 지켜본다”는 순서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버림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붙잡음이 잠시 약해진 순간을 알아본 적이 있는지 조용히 물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