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을 어떻게 닦고 많이 수행해야 일곱 깨달음 요소가 원만해지는가?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불만을 버리고 머물 때 그의 알아차림은 굳게 서고 흐려지지 않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알아차림이 굳게 서고 흐려지지 않은 그때 알아차림의 깨달음 요소가 일어나느니라. 그는 그 요소를 닦고, 그 요소는 닦음의 완성에 이르느니라.”
Kathaṁ bhāvitā ca, bhikkhave, cattāro satipaṭṭhānā kathaṁ bahulīkatā satta bojjhaṅge paripūrenti? Yasmiṁ samaye,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upaṭṭhitāssa tasmiṁ samaye sati hoti asammuṭṭhā. Yasmiṁ samaye, bhikkhave, bhikkhuno upaṭṭhitā sati hoti asammuṭṭhā, satisambojjhaṅgo tasmiṁ samaye bhikkhuno āraddho hoti. Satisambojjhaṅgaṁ tasmiṁ samaye bhikkhu bhāveti, satisambojjhaṅgo tasmiṁ samaye bhikkhuno bhāvanāpāripūriṁ gacchati.
맛지마 니까야 MN 118 들숨날숨경 (Ānāpānasatisutta)배경
네 알아차림의 확립이 일곱 깨달음 요소를 어떻게 원만하게 하는지 묻는 질문과 첫 답을 함께 두었습니다. 답은 네 확립 가운데 몸 관찰을 대표로 온전히 제시합니다. 열심·분명한 앎·알아차림·탐욕과 불만의 버림을 갖추어 머물 때 sati가 굳게 서고 흐려지지 않습니다. 같은 조건이 다음 문장에 다시 들어가 알아차림의 깨달음 요소가 시작되고, 수행자가 그것을 닦으며, 그것이 bhāvanāpāripūri, 닦음의 완성에 이르는 세 단계로 이어집니다. 질문의 원만함은 첫 요소의 발생·닦음·완성에서 구체적으로 답되기 시작합니다.
묵상
알아차림이 “굳게 서고 흐려지지 않음”에서 시작·닦음·완성으로 이어지는 점이 보이나요? 늘 선명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잠깐이라도 주의가 머문 순간이 어떤 느낌인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