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세존 가까이에서 여러 도박꾼이 주사위를 놀고 있었습니다. 장자가 그들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고따마 수행자를 찾아가 절하고 한쪽에 앉았느니라. 여러분, 고따마 수행자는 내게 ‘장자여, 그대의 감각 기능은 자기 마음에 안정된 사람의 것 같지 않습니다. 그대의 감각 기능에는 변화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느니라.”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akkhadhuttā bhagavato avidūre akkhehi dibbanti. Atha kho so gahapati yena te akkhadhutt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akkhadhutte etadavoca: “idhāhaṁ, bhonto, yena samaṇo gotamo tenupasaṅkamiṁ; upasaṅkamitvā samaṇaṁ gotam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ṁ. Ekamantaṁ nisinnaṁ kho maṁ, bhonto, samaṇo gotamo etadavoca: ‘na kho te, gahapati, sake citte ṭhitassa indriyāni, atthi te indriyānaṁ aññathattan’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경 (Piyajātikasutta)배경
거사는 세존에게서 떠난 뒤 가까이 있던 도박꾼들에게 방금 대화를 전합니다. 이 전달은 “여러분”이라는 호칭을 두 번 두고, 방문·절·착석과 세존의 첫 관찰을 순서대로 되풀이합니다. 세존을 “고따마 수행자”라고 부르는 것은 거사가 도박꾼들에게 쓰는 전달 화법이며 서술자의 호칭이 아닙니다. 같은 사건이 다른 청중에게 다시 말해지면서, 개인의 반박이 사회적 동의를 얻고 왕궁까지 퍼지는 경의 전개가 시작됩니다.
묵상
대화를 다른 사람에게 옮길 때 상대의 실제 말과 내 해석을 구분하나요? 방문부터 첫 발언까지 순서를 보존해 전한다면, 듣는 이는 사건과 해석의 경계를 더욱 분명히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