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꾼의 동의에서 왕궁의 논쟁으로

도박꾼들이 거사의 기쁨·행복 주장을 지지하고, 소문을 들은 빠세나디 왕이 말리까 왕비에게 세존의 말을 묻습니다.

도박꾼들은 “그렇습니다, 장자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장자여. 장자여, 기쁨과 행복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납니다”라고 했고, 장자는 뜻이 맞는다며 떠났습니다. 이야기가 왕궁에 이르자 빠세나디 왕이 말했습니다. “말리까여, 그대의 고따마 수행자는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고 했소.” “대왕이시여, 세존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러합니다.”

“Evametaṁ, gahapati, evametaṁ, gahapati. Piyajātikā hi, gahapati, ānandasomanassā piyappabhavikā”ti. Atha kho so gahapati “sameti me akkhadhuttehī”ti pakkāmi. Atha kho idaṁ kathāvatthu anupubbena rājantepuraṁ pāvisi.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mallikaṁ deviṁ āmantesi: “idaṁ te, mallike, samaṇena gotamena bhāsita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Sacetaṁ, mahārāja, bhagavatā bhāsitaṁ, evametan”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경 (Piyajātikasutta)

배경

도박꾼들은 세존의 명제가 아니라 거사의 기쁨·행복 명제에 같은 형식으로 동의하며 “거사여”를 세 번 되풀이합니다. 거사는 서로 뜻이 맞는다고 여기고 떠납니다. 이 이야기가 왕궁까지 전해지자 빠세나디 왕은 말리까에게 세존의 다섯 괴로움 명제를 알리고, 왕비는 세존께서 실제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옳다고 답합니다. 왕이 전한 문장에도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의 다섯 항목과 두 기원 서술이 모두 나옵니다.

묵상

내 생각과 같은 말을 만났을 때 사실 확인이 끝났다고 느끼나요? 뜻이 맞는 사람의 동의와 원래 말의 의미를 직접 확인하는 일 사이에는 어떤 거리가 있을까요? 서둘러 편을 정하지 않는 선택도 가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