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찾아 헤맨 여인

세존께서 사왓티에서 어머니를 잃고 거리와 광장을 돌며 두 번 찾아 묻던 여인의 사례를 드십니다.

“바라문이여,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나는 이치를 이렇게도 알아야 하느니라. 바라문이여, 예전에 이 사왓티에서 어떤 여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느니라. 그 여인은 정신을 잃고 마음이 흐트러져 거리와 광장을 다니며 ‘내 어머니를 보셨습니까? 내 어머니를 보셨습니까?’라고 말했느니라.”

Tadamināpetaṁ, brāhmaṇa,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 Bhūtapubbaṁ, brāhmaṇa, imissāyeva sāvatthiyā aññatarissā itthiyā mātā kālamakāsi. Sā tassā kālakiriyāya ummattikā khittacittā rathikāya rathikaṁ siṅghāṭakena siṅghāṭakaṁ upasaṅkamitvā evamāha: ‘api me mātaraṁ addassatha, api me mātaraṁ addassath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경 (Piyajātikasutta)

배경

세존이 드는 첫 구체 사례입니다. “바라문이여”가 원리의 도입과 사건의 시작에서 두 번 나오고, 장소는 바로 이 사왓티입니다. 원문은 어머니의 죽음 뒤 여인이 정신을 잃고 마음이 흩어진 채 거리와 광장을 옮겨 다니며 같은 질문을 두 번 했다고 전합니다. 이는 오늘의 독자에게 임상적 진단을 붙이는 문장이 아니라 경 속 한 사람의 극심한 사별 반응을 묘사한 사례이며, 사랑과 상실의 연결을 추상어에 머물지 않게 합니다.

묵상

이 사별 장면이 힘들다면 잠시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을 수 있다면, “보셨습니까?”를 두 번 묻는 말에서 찾는 마음과 이미 일어난 상실 사이의 간격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천천히 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