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까 자신에 대한 문답

말리까 왕비가 자신을 사랑하는지와 자신의 변화가 가져올 결과를 묻고 세존의 말씀을 확인합니다.

“대왕이시여, 저를 사랑하십니까?” “그렇소, 말리까여. 그대를 사랑하오.” “대왕이시여, 제가 변하면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기겠습니까?” “말리까여, 그대가 변하면 내 삶도 달라질 것이오. 어찌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기지 않겠소?” “대왕이시여, 알고 보시는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께서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piyā te ahan”ti? “Evaṁ, mallike, piyā mesi tvan”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mayhaṁ te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uppajjeyyu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Tuyhañhi me, mallike,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jīvitassapi siyā aññathattaṁ, kiṁ pana me na uppajjiss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경 (Piyajātikasutta)

배경

네 번째에는 질문자인 말리까 자신이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왕은 왕비를 사랑한다고 답하고, 왕비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자신의 삶마저 달라지고 다섯 괴로움이 생길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왕비는 다시 세존의 명제를 연결합니다. “대왕이시여” 세 번과 “말리까여” 두 번은 앞 문답과 같지만, 질문자가 자신을 예로 드는 점이 달라집니다. 논쟁의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상대가 이미 인정한 사랑과 변화의 조건을 따라 결론에 이릅니다.

묵상

자신이 논쟁의 한가운데 있을 때도 상대가 실제로 소중히 여기는 것을 출발점으로 물을 수 있나요? 승패보다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에서 시작할 때 상대를 설득하는 방식과 내 이해는 어떻게 달라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