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가따빠씨가 세존의 용어를 되묻다

디가따빠씨가 벌의 갈래를 묻자 세존은 여래가 벌이라 하지 않고 행위라는 말을 쓴다고 답합니다.

디가따빠씨가 물었습니다. “고따마 벗이여, 그대는 나쁜 행위를 짓고 이어 가는 벌을 몇 가지로 세웁니까?” “따빠씨여, 여래는 ‘벌’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 아닙니다. 따빠씨여, 여래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Evaṁ vutte, dīghatapassī nigaṇṭho bhagavantaṁ etadavoca: “tvaṁ panāvuso gotama, kati daṇḍāni paññapesi pāpassa kammassa kiriyāya pāpassa kammassa pavattiyā”ti? “Na kho, tapassi, āciṇṇaṁ tathāgatassa ‘daṇḍaṁ, daṇḍan’ti paññapetuṁ; ‘kammaṁ, kamman’ti kho, tapassi, āciṇṇaṁ tathāgatassa paññapetun”ti?

맛지마 니까야 MN 56 우빨리경 (Upālisutta)

배경

이번에는 질문자의 자리가 바뀝니다. 디가따빠씨가 세존에게 같은 틀로 묻지만 daṇḍa라는 니간타 용어를 사용합니다. 세존은 벌이라 말하는 것이 보통이 아니라는 부정과 kamma, 곧 행위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긍정을 각각 답합니다. 앞에서 세존이 상대의 정정을 받아들였듯이 디가따빠씨도 이 어휘를 받아 다음 질문을 잇습니다. 두 체계는 몸·말·마음 배열은 공유하지만 용어와 우열은 다릅니다.

묵상

상대가 내 질문의 용어를 바로잡을 때 방어적으로 반응하나요, 아니면 그 사람이 쓰는 구분을 배워 보나요? 같은 형식으로 서로의 말을 확인하면 논쟁의 공정성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서로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