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따뿟따가 몸의 벌을 다시 높이다

나따뿟따가 디가따빠씨의 답을 칭찬하고 마음의 벌을 하찮게 여기며 몸의 벌이 가장 무겁다고 선언합니다.

나따뿟따가 말했습니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따빠씨여. 배운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해 답하듯 디가따빠씨는 고따마 수행자에게 답했습니다. 이렇게 거친 몸의 벌에 견주면 보잘것없는 마음의 벌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몸의 벌이 가장 큰 허물이며 말과 마음의 벌은 그만하지 않습니다.”

Evaṁ vutte, nigaṇṭho nāṭaputto dīghatapassiṁ nigaṇṭhaṁ etadavoca: “sādhu sādhu, tapassi. Yathā taṁ sutavatā sāvakena sammadeva satthusāsanaṁ ājānantena evameva dīghatapassinā nigaṇṭhena samaṇassa gotamassa byākataṁ. Kiñhi sobhati chavo manodaṇḍo imassa evaṁ oḷārikassa kāyadaṇḍassa upanidhāya. Atha kho kāyadaṇḍova mahāsāvajjataro pāpassa kammassa kiriyāya pāpassa kammassa pavattiyā, no tathā vacīdaṇḍo, no tathā manodaṇḍo”ti.

맛지마 니까야 MN 56 우빨리경 (Upālisutta)

배경

나따뿟따는 보고를 검토하기보다 제자의 답이 자신의 가르침과 맞는다는 이유로 두 번 칭찬합니다. 그는 마음의 벌을 chava, 곧 보잘것없다고 낮추고 몸의 벌을 oḷārika, 거칠고 뚜렷한 것으로 대비합니다. 결론은 다시 몸의 벌이 가장 큰 허물이라는 니간타 쪽 입장입니다. 이 평가는 곁에서 듣던 우빨리에게 논쟁의 승리를 확신하게 하고, 그가 세존을 논파하러 가겠다고 나서는 계기가 됩니다.

묵상

내 편의 사람이 예상한 답을 했을 때 내용을 다시 살피기보다 곧바로 칭찬하나요? 눈에 더 뚜렷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언제나 더 중요한지 한 번 더 물어볼 수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원인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