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여, 중병에 걸린 니간타가 찬물을 물리치고 뜨거운 물만 쓰다가 찬물을 얻지 못해 죽는다면, 장자여, 나따뿟따는 그가 어디에 태어난다고 하는가?” “세존이시여, ‘마음에 매인 신들’에게 태어납니다.” “왜입니까?” “세존이시여, 마음에 집착한 채 죽기 때문입니다.”
“Taṁ kiṁ maññasi, gahapati, idhassa nigaṇṭho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sītodakapaṭikkhitto uṇhodakapaṭisevī. So sītodakaṁ alabhamāno kālaṁ kareyya. Imassa pana, gahapati, nigaṇṭho nāṭaputto katthūpapattiṁ paññapetī”ti? “Atthi, bhante, manosattā nāma devā tattha so upapajjati”. “Taṁ kissa hetu”? “Asu hi, bhante, manopaṭibaddho kālaṁ karotī”ti.
맛지마 니까야 MN 56 우빨리경 (Upālisutta)배경
첫 논증은 육체의 병과 죽음으로 시작하지만 결론의 원인은 마음입니다. 우빨리는 나따뿟따의 교설에 따라 그런 수행자가 manosatta라는 신들에게 태어나며, 그 이유는 manopaṭibaddha, 곧 마음에 매이고 집착한 채 죽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세존은 아직 자신의 결론을 덧붙이지 않고 우빨리의 답에서 마음이 사후 결과를 결정한다는 전제를 드러냅니다. 몸의 벌이 언제나 가장 무겁다는 앞 주장과 긴장이 생깁니다.
묵상
겉으로는 몸의 사건처럼 보여도 결과를 설명할 때 마음의 상태를 근거로 든 적이 있나요? 내 판단 안에서 몸과 마음에 적용하는 기준이 서로 맞는지 천천히 비교해 볼 수 있을까요? 같은 잣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