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여, 네 겹의 단속으로 단속되고, 막을 것을 모두 막고, 거기에 묶이고, 악을 털고, 온전히 단속된 니간타가 오가며 작은 생명들을 많이 해친다면 장자여, 나따뿟따는 어떤 결과를 말하는가?” “세존이시여, 의도하지 않은 일은 큰 허물이 아니라고 합니다.”
“Taṁ kiṁ maññasi, gahapati, idhassa nigaṇṭho nāṭaputto cātuyāmasaṁvarasaṁvuto sabbavārivārito sabbavāriyutto sabbavāridhuto sabbavāriphuṭo. So abhikkamanto paṭikkamanto bahū khuddake pāṇe saṅghātaṁ āpādeti. Imassa pana, gahapati, nigaṇṭho nāṭaputto kaṁ vipākaṁ paññapetī”ti? “Asañcetanikaṁ, bhante, nigaṇṭho nāṭaputto no mahāsāvajjaṁ paññapetī”ti.
맛지마 니까야 MN 56 우빨리경 (Upālisutta)배경
두 번째 논증은 몸으로 실제 생명을 해친 장면을 듭니다. 수행자는 다섯 겹의 정형 설명으로 엄격히 단속되어 있지만, 오가다가 작은 생명들을 해칩니다. 우빨리는 asaṃcetanika, 곧 의도하지 않은 행위라면 큰 허물이 아니라고 답합니다. 몸의 결과가 발생했어도 의도의 유무가 허물의 크기를 바꾼다는 니간타 교설을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다음 질문은 그 의도를 어디에 분류하는지 묻습니다.
묵상
같은 결과가 생겼더라도 의도했는지에 따라 책임을 다르게 판단하나요? 결과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의도의 유무를 함께 보는 기준은 어떤 모습일까요? 두 요소를 함께 둘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