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여, 잘 생각하라. 장자여, 생각한 뒤 답하라. 앞말과 뒷말이 맞지 않느니라. 장자여, 그대는 ‘세존이시여, 진실에 서서 논하겠습니다. 대화하겠습니다’라고 말했느니라.”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몸의 벌이 가장 큰 허물이며 말과 마음의 벌은 그만하지 않습니다.”
“Manasi karohi, gahapati, manasi karitvā kho, gahapati, byākarohi. Na kho te sandhiyati purimena vā pacchimaṁ, pacchimena vā purimaṁ. Bhāsitā kho pana te, gahapati, esā vācā: ‘sacce ahaṁ, bhante, patiṭṭhāya mantessāmi; hotu no ettha kathāsallāpo’”ti. “Kiñcāpi, bhante, bhagavā evamāha, atha kho kāyadaṇḍova mahāsāvajjataro pāpassa kammassa kiriyāya pāpassa kammassa pavattiyā, no tathā vacīdaṇḍo, no tathā manodaṇḍo”ti.
맛지마 니까야 MN 56 우빨리경 (Upālisutta)배경
첫 논증과 같은 정형구가 두 번째에도 온전히 반복됩니다. “장자여” 두 번, 생각한 뒤 답하라는 요청, 앞뒤 불일치, 진실에 서겠다는 약속이 같은 순서로 나옵니다. 이번 모순은 더 선명합니다. 의도가 없으면 큰 허물이 아니고, 의도하면 큰 허물이며, 그 의도는 마음의 벌에 속한다고 우빨리 자신이 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몸의 벌 우위를 고수해 아직 논쟁을 이어 갑니다.
묵상
같은 지적이 다른 사례에서도 되풀이될 때 내 입장을 지키는 이유가 근거인지 익숙함인지 구별할 수 있나요? 답을 바꾸지 않더라도 그 이유를 새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반복만 하고 있지는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