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사람은 날란다를 해칠 수 있는가

한 사람이 칼로 날란다의 모든 생명을 한 덩이로 만들 수 있는지 묻자 우빨리가 쉰 명도 못한다고 답합니다.

“장자여, 칼을 든 사람이 ‘한순간에 날란다의 모든 생명을 한 고깃덩이로 만들겠다’고 한다면 장자여, 그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세존이시여, 열 명도, 세존이시여, 스무 명도, 세존이시여, 서른 명도, 세존이시여, 마흔 명도, 세존이시여, 쉰 명도 못합니다. 보잘것없는 한 사람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Taṁ kiṁ maññasi, gahapati, idha puriso āgaccheyya ukkhittāsiko. So evaṁ vadeyya: ‘ahaṁ yāvatikā imissā nāḷandāya pāṇā te ekena khaṇena ekena muhuttena ekaṁ maṁsakhalaṁ ekaṁ maṁsapuñjaṁ karissāmī’ti. Taṁ kiṁ maññasi, gahapati, pahoti nu kho so puriso yāvatikā imissā nāḷandāya pāṇā te ekena khaṇena ekena muhuttena ekaṁ maṁsakhalaṁ ekaṁ maṁsapuñjaṁ kātun”ti? “Dasapi, bhante, purisā, vīsampi, bhante, purisā, tiṁsampi, bhante, purisā, cattārīsampi, bhante, purisā, paññāsampi, bhante, purisā nappahonti yāvatikā imissā nāḷandāya pāṇā te ekena khaṇena ekena muhuttena ekaṁ maṁsakhalaṁ ekaṁ maṁsapuñjaṁ kātuṁ. Kiñhi sobhati eko chavo puriso”ti.

맛지마 니까야 MN 56 우빨리경 (Upālisutta)

배경

세존은 몸의 힘을 극단적으로 확대해 시험합니다. 칼을 든 한 사람이 한순간과 짧은 시간에 날란다의 모든 생명을 하나의 고깃덩이와 무더기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우빨리는 열·스물·서른·마흔·쉰 명이라는 다섯 수를 모두 들어도 불가능하다고 답합니다. 이 폭력적 가정은 실행을 권하는 말이 아니라 몸의 힘에 한계가 있음을 드러내기 위한 비교의 첫 절반에 해당합니다.

묵상

이 폭력적 가정이 불편하면 장면을 자세히 머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읽을 수 있다면, 수가 늘어나도 몸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는 논점만 남겨 둘 수 있을까요? 불편함도 존중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