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다시 수행자는 이 몸을
발바닥에서 위로, 머리털에서 아래로
살갗에 감싸여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살피느니라.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장간막, 위 속 음식,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기름기,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고 아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uddhaṁ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ṁ pūraṁ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ṁ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ṁsaṁ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ṁ vakkaṁ hadayaṁ yakanaṁ kilomakaṁ pihakaṁ papphāsaṁ antaṁ antaguṇaṁ udariyaṁ karīsaṁ pittaṁ semhaṁ pubbo lohitaṁ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맛지마 니까야 MN 10 알아차림의 확립경 (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여기서 부처님은 몸을 신비롭거나 특별한 것으로 보지 않고, 그것을 이루는 것들을 하나하나 이름 붙여 살펴보게 하십니다. 머리털부터 오줌까지, 몸을 이루는 것들을 낱낱이 나열하는 이 대목은 몸을 혐오하라는 뜻이 아니라, "나"라고 여기며 붙잡고 있는 이 몸이 사실은 여러 요소가 모인 것일 뿐임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이름 붙여 보면, 몸 전체를 하나의 고정된 "나"로 여기던 마음이 조금씩 느슨해집니다.
묵상
몸의 어느 한 부분에 대해서만 유독 신경 쓰거나 집착해 본 적이 있나요? 몸을 이렇게 여러 요소가 모인 것으로 바라보면, 그 집착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까요? 오늘은 그 부분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아도 좋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마치 양쪽이 트인 자루에
좋은 벼와 보통 벼, 녹두와 콩,
참깨와 도정한 쌀,
온갖 곡식이 가득 담겨 있어
눈 밝은 사람이 그것을 열어
‘이것은 좋은 벼, 이것은 보통 벼,
이것은 녹두, 이것은 콩,
이것은 참깨, 이것은 도정한 쌀이다’라고
살펴보는 것과 같으니라.
Seyyathāpi, bhikkhave, ubhatomukhā putoḷi pūrā nānāvihitassa dhaññassa, seyyathidaṁ—sālīnaṁ vīhīnaṁ muggānaṁ māsānaṁ tilānaṁ taṇḍulānaṁ. Tamenaṁ cakkhumā puriso muñcitvā paccavekkheyya: ‘ime sālī ime vīhī ime muggā ime māsā ime tilā ime taṇḍulā’ti.
맛지마 니까야 MN 10 알아차림의 확립경 (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곡식 자루의 비유가 이어집니다. 자루를 열어 그 안의 쌀과 콩과 참깨를 하나하나 구분해 보듯, 몸을 열어 그 안의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두 비유 모두 같은 태도를 가리킵니다. 두려워하며 피하는 것이 아니라, 눈 밝은 사람처럼 담담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 절 역시 앞서와 같은 후렴, 안팎으로 관찰하며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묵상
몸을 마치 낯선 자루 속을 들여다보듯 담담하게 살펴본다면 무엇이 보일까요? 두려움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오늘 잠깐이라도 해보면 어떨까요? 판단하지 않고 그저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다시 수행자는 이 몸을
놓인 그대로, 자리한 그대로
요소로써 살피나니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아느니라.
마치 능숙한 백정이 소를 잡아
네거리에 부위별로 나누어 놓고
앉아 있는 것과 같으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yathāṭhitaṁ yathāpaṇihitaṁ dhātus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ṁ kāye 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goghātako vā goghātakantevāsī vā gāviṁ vadhitvā catumahāpathe bilaso vibhajitvā nisinno assa.
맛지마 니까야 MN 10 알아차림의 확립경 (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이번에는 몸을 땅과 물과 불과 바람, 네 가지 요소로 살피는 법입니다. 땅은 단단함과 형태를, 물은 축축함과 흐름을, 불은 따뜻함과 열기를, 바람은 움직임과 호흡을 가리킵니다. 백정이 소를 잡아 부위별로 나누어 놓듯 몸을 요소로 나누어 본다는 비유는 잔인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몸을 "나"라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물질의 결합으로 담담히 보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 절 역시 앞서와 같은 후렴으로 마무리됩니다.
묵상
몸이 그저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이라는 요소들이 잠시 모여 있는 것이라면, 지금 겪고 있는 몸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까요? 그 요소들이 언젠가 흩어진다는 사실은 어떤 마음을 불러일으키나요?
수행자들이여, 다시 수행자는
마치 무덤가에 버려진 시신을 보듯이 하나니
죽은 지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 되어
부풀어 오르고 검푸르게 되고
고름이 흐르는 시신을 보고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보느니라.
‘이 몸도 그러한 성질을 지녔으며
그러한 상태가 될 것이며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살피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ṁ sivathikāya chaḍḍitaṁ ekāhamataṁ vā dvīhamataṁ vā tīhamataṁ vā uddhumātakaṁ vinīlakaṁ vipubbakajātaṁ. So imameva kāyaṁ upasaṁharati: ‘ayampi kho kāyo evaṁdhammo evaṁbhāvī evaṁanatīto’ti.
맛지마 니까야 MN 10 알아차림의 확립경 (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여기서부터는 무덤가에서 시신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처님 당시 실제로 행해지던 수행입니다. 죽은 지 하루 이틀 사흘 되어 부풀고 검푸르게 변한 시신을 보고, 자신의 몸도 언젠가 그렇게 될 것임을 살피는 대목입니다. 이 관찰은 시신을 혐오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기 위한 것입니다. 아프거나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면 이 대목이 낯설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이 전하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몸에 너무 매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라는 초대에 가깝습니다.
묵상
몸에 대한 걱정이나 집착이 마음을 무겁게 할 때가 있나요?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거기에 너무 매이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지, 천천히 생각해 보아도 좋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시 수행자는
무덤가에 버려진 시신을
까마귀와 매와 독수리와 왜가리가 뜯어 먹고
개와 호랑이와 표범과 승냥이와
온갖 작은 것들이 파먹는 것을 보고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보느니라.
‘이 몸도 그러한 성질을 지녔으며
그러한 상태가 될 것이며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살피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ṁ sivathikāya chaḍḍitaṁ kākehi vā khajjamānaṁ kulalehi vā khajjamānaṁ gijjhehi vā khajjamānaṁ kaṅkehi vā khajjamānaṁ sunakhehi vā khajjamānaṁ byagghehi vā khajjamānaṁ dīpīhi vā khajjamānaṁ siṅgālehi vā khajjamānaṁ vividhehi vā pāṇakajātehi khajjamānaṁ. So imameva kāyaṁ upasaṁharati: ‘ayampi kho kāyo evaṁdhammo evaṁbhāvī evaṁanatīto’ti.
맛지마 니까야 MN 10 알아차림의 확립경 (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앞선 부풀어 오른 시신의 모습에 이어, 이번에는 까마귀와 개와 온갖 짐승에게 뜯기는 시신을 살피는 대목입니다. 두 대목은 하나의 관찰이 단계적으로 이어지는 것이지, 별개의 새로운 가르침이 아닙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관찰의 목적은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몸이라는 것이 결국 변하고 흩어지는 것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데 있습니다. 죽음과 관련된 상실을 겪었다면,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고 다음으로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무엇도 지금 이대로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늘을 대하는 마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나 순간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게 되지는 않나요? 그 마음을 오늘 한 번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다시 수행자는 무덤가에 버려진 시신이
살과 피가 남아 힘줄로 이어진 해골로
살은 없이 피만 묻어 힘줄로 이어진 해골로
살도 피도 없이 힘줄로만 이어진 해골로
변해가는 것을 보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ṁ sivathikāya chaḍḍitaṁ aṭṭhikasaṅkhalikaṁ samaṁsalohitaṁ nhārusambandhaṁ …pe… Aṭṭhikasaṅkhalikaṁ nimaṁsalohitamakkhitaṁ nhārusambandhaṁ …pe… Aṭṭhikasaṅkhalikaṁ apagatamaṁsalohitaṁ nhārusambandhaṁ …pe…
맛지마 니까야 MN 10 알아차림의 확립경 (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무덤가 관찰은 계속 이어져, 이번에는 살이 흩어지고 뼈만 남아가는 단계입니다. 살과 피가 남은 해골에서, 피만 남은 해골로, 마침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로만 이어진 해골로 변해갑니다. 이 대목은 전해지는 원문 자체가 생략 표시로 반복 서술을 줄여 둔 자리입니다. 뼈가 흩어지는 마지막 모습과 그에 대한 살핌은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이 관찰은 새로운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몸이 단계를 거쳐 서서히 스러져 감을 담담히 지켜보는 훈련입니다.
묵상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면, 지금 붙잡고 있는 무언가를 조금 더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은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뼈들이 힘줄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
손뼈, 발뼈, 발목뼈, 정강이뼈,
넓적다리뼈, 골반뼈, 갈비뼈, 등뼈,
어깨뼈, 목뼈, 턱뼈, 이, 두개골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것을 보나니
이 몸도 그러한 성질을 지녔으며
그러한 상태가 될 것이며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살피느니라.
Aṭṭhikāni apagatasambandhāni disā vidisā vikkhittāni, aññena hatthaṭṭhikaṁ aññena pādaṭṭhikaṁ aññena gopphakaṭṭhikaṁ aññena jaṅghaṭṭhikaṁ aññena ūruṭṭhikaṁ aññena kaṭiṭṭhikaṁ aññena phāsukaṭṭhikaṁ aññena piṭṭhiṭṭhikaṁ aññena khandhaṭṭhikaṁ aññena gīvaṭṭhikaṁ aññena hanukaṭṭhikaṁ aññena dantaṭṭhikaṁ aññena sīsakaṭāhaṁ. So imameva kāyaṁ upasaṁharati: ‘ayampi kho kāyo evaṁdhammo evaṁbhāvī evaṁanatīto’ti.
맛지마 니까야 MN 10 알아차림의 확립경 (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앞선 편에서 살이 흩어지던 해골은, 이제 힘줄마저 사라져 뼈 하나하나가 사방으로 흩어진 모습에 이릅니다. 손뼈는 여기, 발뼈는 저기, 흩어진 뼈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는 이 대목은 몸이라는 것이 애초에 하나의 고정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부분이 잠시 모여 있던 것일 뿐임을 보여줍니다. 이 절 역시 앞서와 같은 후렴, 안팎으로 관찰하며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묵상
지금 하나로 여기고 있는 것들 중에, 사실은 여러 조각이 잠시 모여 있을 뿐인 것이 있을까요? 그것을 알아차리면, 그것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떠올려 보아도 좋습니다.
다시 수행자는
조개껍데기처럼 하얗게 바랜 뼈와
무더기로 쌓여 해를 넘긴 뼈와
썩어서 가루가 된 뼈를 보나니
이 몸도 그러한 성질을 지녔으며
그러한 상태가 될 것이며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살피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ṁ sivathikāya chaḍḍitaṁ, aṭṭhikāni setāni saṅkhavaṇṇapaṭibhāgāni …pe… Aṭṭhikāni puñjakitāni terovassikāni …pe… Aṭṭhikāni pūtīni cuṇṇakajātāni. So imameva kāyaṁ upasaṁharati: ‘ayampi kho kāyo evaṁdhammo evaṁbhāvī evaṁanatīto’ti.
맛지마 니까야 MN 10 알아차림의 확립경 (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무덤가 관찰의 마지막 세 단계입니다. 조개껍데기처럼 하얗게 바랜 뼈, 무더기로 쌓여 세월이 흐른 뼈, 마침내 썩어 가루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뼈. 아홉 단계에 걸친 이 긴 관찰은 결국 두려움이 아니라 고요함으로 끝납니다. 가루가 된 뼈는 더 이상 무섭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의 끝처럼 보입니다. 부처님이 이 관찰을 통해 전하려 하신 것은, 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수록 오히려 지금 이 삶을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묵상
언젠가 이 몸도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지금 이 순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 답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작은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을까요? 천천히 마음속으로 그려 보아도 좋습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살피며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세상 그 무엇도 붙들지 않으며 머무느니라.
아홉 가지 무덤가 관찰이 이로써 끝나고
몸에 대한 열네 가지 관찰이
이로써 모두 끝나느니라.
Iti ajjhatta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ṁ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ṁ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ṁ viharati. ‘Atthi kāyo’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Navasivathikapabbaṁ niṭṭhitaṁ. Cuddasakāyānupassanā niṭṭhitā.
맛지마 니까야 MN 10 알아차림의 확립경 (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이 구절은 몸에 대한 아홉 가지 무덤가 관찰 전체를, 나아가 호흡부터 시작된 몸에 대한 열네 가지 관찰 전체를 마무리하는 자리입니다. 안으로도 밖으로도 살피고, 일어나고 사라짐을 지켜보며,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붙들지 않는다는 이 후렴은 이 글 앞부분의 호흡 관찰에서 이미 온전히 다룬 것과 같은 후렴입니다. 몸 전체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서 한 매듭을 짓습니다. 다음으로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묵상
여기까지 몸에 관한 이야기를 따라오며, 자신의 몸에 대해 새롭게 느낀 것이 있나요? 그 느낌을 잠시 붙잡지 말고 그저 바라보아도 좋습니다. 다음으로 이어질 느낌에 대한 이야기에는 어떤 마음으로 들어가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