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이 숙고를 권하자 우빨리가 더 기뻐하다

세존께서 이름난 우빨리에게 숙고한 뒤 행동하라 하시자 우빨리는 다른 종교의 과시와 대조합니다.

“장자여, 잘 살펴본 뒤 행동하라. 장자여, 그대처럼 이름난 사람은 숙고하여 행동하는 것이 좋으니라.” “세존이시여, 그래서 더욱 기쁘고 만족합니다. 세존이시여, 다른 종교가 저를 제자로 얻었다면 ‘우빨리가 우리 제자가 되었다’는 깃발을 온 날란다에 들고 다녔을 것입니다.”

“Anuviccakāraṁ kho, gahapati, karohi, anuviccakāro tumhādisānaṁ ñātamanussānaṁ sādhu hotī”ti. “Imināpāhaṁ, bhante, bhagavato bhiyyoso mattāya attamano abhiraddho yaṁ maṁ bhagavā evamāha: ‘anuviccakāraṁ kho, gahapati, karohi, anuviccakāro tumhādisānaṁ ñātamanussānaṁ sādhu hotī’ti. Mañhi, bhante, aññatitthiyā sāvakaṁ labhitvā kevalakappaṁ nāḷandaṁ paṭākaṁ parihareyyuṁ: ‘upāli amhākaṁ gahapati sāvakattaṁ upagato’ti.

맛지마 니까야 MN 56 우빨리경 (Upālisutta)

배경

세존은 우빨리의 귀의를 즉시 자랑하거나 확정하지 않고 anuviccakāra, 곧 잘 살펴본 뒤 행동하라고 합니다. 특히 우빨리처럼 널리 알려진 사람의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우빨리는 이 말 때문에 더 기쁘다고 하며, 다른 종교라면 자신의 전향을 알리는 깃발을 날란다 전역에 들고 다녔을 것이라고 비교합니다. 개종의 숫자보다 판단의 자율성을 앞세운 응답이 그의 신뢰를 깊게 합니다.

묵상

내 선택을 반기는 사람이 오히려 다시 숙고하라고 말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즉시 환영받는 것과 스스로 확인할 시간을 보장받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믿음을 주나요? 결정권은 누구에게 남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