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여, 고환을 나르는 사람이 갔다가 고환을 잃고 돌아오거나 눈을 나르는 사람이 갔다가 눈을 잃고 돌아오는 것과 같으니라. 장자여, 그대도 ‘스승이시여, 고따마의 주장을 논박하러 가겠습니다’라고 갔다가 거대한 논쟁의 그물에 휘감겨 돌아왔느니라. 장자여, 그대는 고따마의 현혹술에 넘어갔느니라.”
Seyyathāpi, gahapati, puriso aṇḍahārako gantvā ubbhatehi aṇḍehi āgaccheyya, seyyathā vā pana gahapati puriso akkhikahārako gantvā ubbhatehi akkhīhi āgaccheyya; evameva kho tvaṁ, gahapati, ‘gacchāmahaṁ, bhante, samaṇassa gotamassa vādaṁ āropessāmī’ti gantvā mahatāsi vādasaṅghāṭena paṭimukko āgato. Āvaṭṭosi kho tvaṁ, gahapati, samaṇena gotamena āvaṭṭaniyā māyāyā”ti.
맛지마 니까야 MN 56 우빨리경 (Upālisutta)배경
나따뿟따는 두 신체 손상 비유를 이어 붙입니다. 고환을 나르는 사람이 갔다가 자기 고환을 잃은 채 돌아오고, 눈을 나르는 사람이 갔다가 자기 눈을 잃은 채 돌아오는 것처럼 우빨리가 목적과 정반대 결과를 얻었다는 뜻입니다. 이어 앞서 디가따빠씨가 썼던 āvaṭṭanī māyā, 다른 종교의 제자를 돌려세우는 현혹술이라는 해석을 직접 반복합니다. 이는 나따뿟따의 모욕적 발화입니다.
묵상
강한 비유가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수치스럽게 만드는 데 쓰일 때가 있나요? 충격적인 표현의 힘과 그 표현이 실제 근거를 제공하는지는 따로 살펴볼 수 있을까요? 불편하면 거리를 두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