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문이 답했습니다. “여보, 아이를 낳을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여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의 장난감이 될 수컷 새끼 원숭이를 사 오고, 여보, 딸을 낳으면 그 딸의 장난감이 될 암컷 새끼 원숭이를 사 오겠습니다.”
Evaṁ vutte, so brāhmaṇo taṁ māṇavikaṁ etadavoca: ‘āgamehi tāva, bhoti, yāva vijāyati. Sace tvaṁ, bhoti, kumārakaṁ vijāyissasi, tassā te ahaṁ āpaṇā makkaṭacchāpakaṁ kiṇitvā ānessāmi, yo te kumārakassa kīḷāpanako bhavissati. Sace pana tvaṁ, bhoti, kumārikaṁ vijāyissasi, tassā te ahaṁ āpaṇā makkaṭacchāpikaṁ kiṇitvā ānessāmi, yā te kumārikāya kīḷāpanikā bhaviss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56 우빨리경 (Upālisutta)배경
바라문은 아내의 요구를 듣고 출산 때까지 기다리라고 답합니다. 이어 두 조건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아들이 태어나면 수컷 새끼 원숭이를 사서 아들의 장난감으로 주고, 딸이 태어나면 암컷 새끼 원숭이를 사서 딸의 장난감으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이유가 막연한 신중함이 아니라 아직 확정되지 않은 두 결과에 필요한 선택이 서로 다르기 때문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두 결과에 따라 필요한 행동이 다르다면 결정을 미루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일까요? 지금 내 앞에서 아직 확인되지 않은 조건과 이미 확인된 조건을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어느 시점에 알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