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시여, 아내에게 마음이 묶인 바라문은 원숭이를 랏따빠니에게 가져가 ‘벗 랏따빠니여, 노란 칠로 물들이고 앞뒤로 두들기며 양면을 문질러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스승이시여, 랏따빠니가 답했습니다. ‘어르신, 이 원숭이는 물들이기는 견뎌도 두들기기와 문지르기는 견디지 못합니다.’”
Atha kho, bhante, so brāhmaṇo tassā māṇavikāya sāratto paṭibaddhacitto taṁ makkaṭacchāpakaṁ ādāya yena rattapāṇi rajakaputt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rattapāṇiṁ rajakaputtaṁ etadavoca: ‘icchāmahaṁ, samma rattapāṇi, imaṁ makkaṭacchāpakaṁ pītāvalepanaṁ nāma raṅgajātaṁ rajitaṁ ākoṭitapaccākoṭitaṁ ubhatobhāgavimaṭṭhan’ti. Evaṁ vutte, bhante, rattapāṇi rajakaputto taṁ brāhmaṇaṁ etadavoca: ‘ayaṁ kho te, bhante, makkaṭacchāpako raṅgakkhamo hi kho, no ākoṭanakkhamo, no vimajjanakkhamo’ti.
맛지마 니까야 MN 56 우빨리경 (Upālisutta)배경
바라문은 아내가 정한 세 작업을 염색공에게 빠짐없이 전달합니다. 랏따빠니는 대상의 성질에 따라 답을 나눕니다. 새끼 원숭이는 색을 입히는 일은 견딜 수 있지만, 천처럼 두들기는 일과 문지르는 일은 견딜 수 없다고 합니다. 같은 요청 안에서도 가능한 항목 하나와 불가능한 항목 둘을 구분하며, 이 차이가 곧 니간타의 주장과 세존의 가르침을 견고성으로 비교하는 비유의 바탕이 됩니다.
묵상
한 제안의 일부가 가능하다고 해서 전체가 타당하다고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나요? 가능한 부분과 견디지 못하는 부분을 항목별로 나누면 판단이 어떻게 더 정확해질까요? 하나씩 확인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