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이 네 가지 알아차림을 이렇게 일곱 해 동안 닦으면, 두 결실 가운데 하나를 기대할 수 있느니라 - 지금 여기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거나, 남은 집착이 있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지에 이르느니라. 일곱 해는 말할 것도 없나니 … 누구든 이렇게 이레 동안만 닦아도 두 결실 가운데 하나를 기대할 수 있나니 - 지금 여기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거나, 남은 집착이 있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지에 이르느니라.
Yo hi koci, bhikkhave,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e evaṁ bhāveyya satta vassāni, tassa dvinnaṁ phalānaṁ aññataraṁ phalaṁ pāṭikaṅkhaṁ diṭṭheva dhamme aññā; sati vā upādisese anāgāmitā. Tiṭṭhantu, bhikkhave, satta vassāni. … Yo hi koci, bhikkhave,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e evaṁ bhāveyya sattāhaṁ, tassa dvinnaṁ phalānaṁ aññataraṁ phalaṁ pāṭikaṅkhaṁ diṭṭheva dhamme aññā sati vā upādisese anāgāmitāti.
맛지마 니까야 MN 10 알아차림의 확립경 (Satipaṭṭhānasutta)배경
이 대목은 사념처경 전체를 마무리하며, 이 네 가지 알아차림을 꾸준히 닦으면 반드시 결실이 있다고 보증하는 자리입니다. 원문은 "일곱 해를 닦으면", "여섯 해를 닦으면" 부터 "이레만 닦아도"까지 기간을 하나씩 줄여가며 같은 약속을 열여섯 번 되풀이합니다(해로 일곱, 달로 일곱, 그리고 반달과 이레). 여기서는 그 처음(일곱 해)과 끝(이레)만 옮기고 가운데는 생략했습니다. 기간이 짧아져도 약속되는 결실은 똑같습니다 - 지금 여기서의 깨달음, 아니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지입니다. 이 반복이 말하려는 것은 기한이 아니라, 이 길을 걸으면 반드시 도착한다는 보증입니다.
묵상
이레 만에 결실을 본다는 말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들리지는 않나요? 사실 이 구절이 말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얼마가 걸리든 이 길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이에요. 지금 내가 몇 해째인지 세지 말고, 오늘 하루 알아차림 한 조각을 놓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