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는
‘삐뚤어진 탐욕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삐뚤어진 탐욕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악의는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악의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성냄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성냄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원한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원한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Sa kho so, bhikkhave, bhikkhu ‘abhijjhāvisamalobho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abhijjhāvisamalob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byāpād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byāpād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kod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kod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upanā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upanā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열여섯 가지를 늘어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부처님은 수행자가 그 오염을 하나씩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대목은 삐뚤어진 탐욕과 악의, 성냄과 원한 네 가지를 다룹니다. 형식은 매번 같습니다. 먼저 "이것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다음 그것을 버립니다.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알아본 뒤에 놓는 수행이라는 점이 이 반복되는 문형에 담겨 있습니다.
묵상
화가 치밀 때, 그 감정을 없애려 애쓰기 전에 먼저 "이것이 성냄이다"라고 알아본 적이 있나요? 오늘 마음에 이는 것 하나만이라도 이름부터 붙여 볼까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감정과 나 사이에 약간의 거리가 생기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남을 깎아내림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남을 깎아내리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남과 맞서 자기를 내세움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남과 맞서 자기를 내세우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질투는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질투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인색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인색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makk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akk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paḷās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paḷās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issā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iss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macchariyaṁ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acchariy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이어서 남을 깎아내리는 마음, 남과 맞서 자기를 내세우는 마음, 질투, 인색을 같은 방식으로 알아보고 버립니다. 겉으로는 남을 향한 말이나 태도로 보이지만, 그 뿌리는 모두 자기 안의 오염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를 깎아내리며 얻는 안도감이나 남과 견주어 자신을 세우려는 마음도 예외 없이 알아보고 놓아야 할 대상으로 놓입니다. 앞서 나온 네 가지와 마찬가지로, 정확히 알아보는 과정 없이는 버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되풀이됩니다.
묵상
누군가와 나를 견주며 우쭐하거나 움츠러든 순간,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들여다본 적이 있나요? 비교하는 마음이 일 때 잠시 멈추어 살펴보면 어떨까요? 나를 낮추어 보이게 만든 그 비교가 정말 사실이었는지도 다시 물어보면 좋겠어요.
“‘속임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속임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위선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위선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완고함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완고함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공격성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공격성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māyā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āy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sāṭheyyaṁ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sāṭheyy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thamb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thamb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sāramb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sāramb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속임과 위선, 완고함과 공격성이 이어집니다. 속임은 없는 것을 있는 척하는 것이고 위선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이니, 둘 다 자기를 실제와 다르게 꾸미는 마음입니다. 완고함은 잘못을 알고도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이고 공격성은 쉽게 날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넷도 앞서와 똑같이 먼저 오염임을 알고 그 자리에서 버리는 방식으로 다루어집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지만, 자신을 실제와 다르게 보이려 하거나 남 앞에서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묵상
내가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고집을 꺾지 못했던 순간이 있나요? 그 완고함의 뿌리를 한번 들여다볼까요?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물러서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는지도 함께 헤아려 보면 좋겠어요.
“‘자만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자만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거만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거만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들뜬 취기는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들뜬 취기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게으름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게으름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mān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ān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atimān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atimān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mad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ad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pamād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pamād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마지막 네 가지, 자만과 거만, 들뜬 취기와 방일이 마무리됩니다. 자만은 스스로를 실제보다 높이 여기는 마음이고 거만은 남을 낮추어 보는 마음이며, 들뜬 취기는 젊음이나 건강, 성취에 취해 우쭐해지는 것이고 방일은 해야 할 일을 미루며 마음을 놓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여섯 가지 모두를 알아보고 버리는 과정이 끝나면, 다음 대목에서는 이 버림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됩니다.
묵상
지금 가진 것에 취해 정작 살펴야 할 것을 미루고 있지는 않나요? 방심하고 있던 자리가 있다면 오늘 한 번 들여다볼까요? 성취나 젊음, 건강처럼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조심스레 다루어야 할 것들인지도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