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 왓타경

맛지마 니까야 MN 7

더러운 옷감의 비유로 마음의 열여섯 오염과 그것을 씻어 내는 길을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32구절

이 경을 6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마음은 무엇에 물드는가 5구절

경이 설해진 자리와 옷감의 비유, 마음을 흐리는 열여섯 가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수행자들을 부르셨다. “수행자들이여.” “세존이시여.” 수행자들이 세존께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Bhagavā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이 대목은 옷감의 비유경이 시작되는 첫 장면입니다. 부처님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실 때 수행자들을 부르시고 가르침을 여십니다. "수행자들이여" 하고 부르시자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하는 짧은 문답은 여러 경전에 되풀이되는 정형구로, 스승이 부르고 제자가 응답하는 자리에서 가르침이 비로소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부처님은 옷감의 비유로 마음의 상태를 설명하십니다.

묵상

누군가 나를 부르고 이야기를 꺼내려 할 때, 하던 일을 멈추고 온전히 귀 기울인 적이 있나요? 바쁘다는 이유로 건성으로 흘려들은 말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도 함께 떠올려 볼까요? 오늘 이 이야기도 그런 마음으로 들어보면 어떨까요?

“수행자들이여, 더럽고 때 묻은 옷감이 있다고 하자. 염색공이 그 옷감을 파랑이나 노랑이나 빨강이나 자홍색, 어떤 물감에 담그더라도 빛깔은 잘 들지 않고 깨끗하지 않으리라. 무엇 때문인가? 수행자들이여, 옷감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와 같이 마음이 오염되면 나쁜 곳으로 향하게 되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vatthaṁ saṅkiliṭṭhaṁ malaggahitaṁ; tamenaṁ rajako yasmiṁ yasmiṁ raṅgajāte upasaṁhareyya—yadi nīlakāya yadi pītakāya yadi lohitakāya yadi mañjiṭṭhakāya durattavaṇṇamevassa aparisuddhavaṇṇamevassa. Taṁ kissa hetu? Aparisuddhattā, bhikkhave, vatthassa. Evameva kho, bhikkhave, citte saṅkiliṭṭhe, duggati pāṭikaṅkhā.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더럽고 때 묻은 옷감은 아무리 좋은 물감에 담가도 빛깔이 곱게 들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그 이유를 "옷감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으신 뒤, 마음도 이와 같아서 오염된 마음은 나쁜 곳으로 향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겉에 무엇을 더하느냐보다 바탕이 어떤 상태인지가 결과를 가른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뒤에 나올 마음의 열여섯 가지 오염을 이해하는 첫 문턱이 됩니다.

묵상

좋은 마음을 먹어도 자꾸 어긋난 방향으로 흘러간 적이 있다면, 그 밑바탕에 무엇이 물들어 있었는지 돌아본 적이 있나요? 겉으로 애쓰는 것만으로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면, 그때 마음의 바탕은 어떤 상태였는지도 함께 살펴보면 좋겠어요.

“수행자들이여, 깨끗하고 맑은 옷감이 있다고 하자. 염색공이 그 옷감을 파랑이나 노랑이나 빨강이나 자홍색, 어떤 물감에 담그더라도 빛깔은 잘 들고 깨끗하리라. 무엇 때문인가? 수행자들이여, 옷감이 깨끗하기 때문이니라. 그와 같이 마음이 오염되지 않으면 좋은 곳으로 향하게 되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vatthaṁ parisuddhaṁ pariyodātaṁ; tamenaṁ rajako yasmiṁ yasmiṁ raṅgajāte upasaṁhareyya—yadi nīlakāya yadi pītakāya yadi lohitakāya yadi mañjiṭṭhakāya—surattavaṇṇamevassa parisuddhavaṇṇamevassa. Taṁ kissa hetu? Parisuddhattā, bhikkhave, vatthassa. Evameva kho, bhikkhave, citte asaṅkiliṭṭhe, sugati pāṭikaṅkhā.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앞의 비유를 뒤집어, 깨끗하고 맑은 옷감은 어떤 물감을 들여도 곱게 물든다고 말씀하십니다. 옷감이 깨끗하기 때문이며, 마음도 오염되지 않으면 좋은 곳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옷감과 깨끗한 옷감이 짝을 이루며, 결과를 가르는 것은 물감이 아니라 바탕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킵니다. 이 대구는 이어지는 열여섯 가지 마음의 오염을 살피는 이유를 밝혀 줍니다.

묵상

마음이 맑았던 날, 평소라면 힘들었을 일도 수월하게 풀렸던 경험이 있나요? 그 맑음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떠올려볼까요? 반대로 오늘 하루 중 마음이 가장 맑았던 순간은 언제였는지도 짚어보면 좋겠어요.

“수행자들이여, 무엇이 마음의 오염인가? 삐뚤어진 탐욕은 마음의 오염이고, 악의는 마음의 오염이며, 성냄은 마음의 오염이고, 원한은 마음의 오염이니라. 남을 깎아내림은 마음의 오염이고, 남과 맞서 자기를 내세움은 마음의 오염이며, 질투는 마음의 오염이고, 인색은 마음의 오염이니라.”

Katame ca, bhikkhave, cittassa upakkilesā? Abhijjhāvisamalobho cittassa upakkileso, byāpādo cittassa upakkileso, kodho cittassa upakkileso, upanāho cittassa upakkileso, makkho cittassa upakkileso, paḷāso cittassa upakkileso, issā cittassa upakkileso, macchariyaṁ cittassa upakkileso, …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부처님은 마음의 오염이 무엇이냐고 스스로 물으신 뒤 열여섯 가지를 하나씩 밝히십니다. 이 대목은 그 가운데 앞의 여덟 가지, 삐뚤어진 탐욕과 악의, 성냄과 원한, 남을 깎아내림과 자기를 내세움, 질투와 인색을 나열합니다. 순간 치미는 성냄과 오래 품는 원한, 남을 낮추는 것과 나를 높이는 것을 각각 구별해 놓아, 서로 비슷해 보이는 마음도 저마다 다른 오염으로 다룹니다.

묵상

이 여덟 가지 가운데 요즘 내 하루를 가장 자주 물들이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름을 하나씩 붙여 가며 찾아보면 어떨까요? 막연히 기분이 나쁘다고 넘기지 않고 정확한 이름을 붙여 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속임은 마음의 오염이고, 위선은 마음의 오염이며, 완고함은 마음의 오염이고, 공격성은 마음의 오염이니라. 자만은 마음의 오염이고, 거만은 마음의 오염이며, 들뜬 취기는 마음의 오염이고, 게으름은 마음의 오염이니라.”

… māyā cittassa upakkileso, sāṭheyyaṁ cittassa upakkileso, thambho cittassa upakkileso, sārambho cittassa upakkileso, māno cittassa upakkileso, atimāno cittassa upakkileso, mado cittassa upakkileso, pamādo cittassa upakkileso.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앞선 여덟 가지에 이어 나머지 여덟 가지 오염이 이어집니다. 속임과 위선, 완고함과 공격성, 자만과 거만, 들뜬 취기와 방일입니다. 남을 속이는 것과 겉과 속이 다른 것, 고집을 꺾지 않는 것과 날을 세우는 것, 스스로를 높이는 것과 남을 낮추어 보는 것을 나란히 놓아 구별합니다. 이렇게 열여섯 가지를 다 갖춘 뒤에야 부처님은 이 오염들을 알아보고 버리는 방법을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묵상

자만과 거만, 들뜬 마음과 방심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결국 나를 살피는 눈을 흐리게 하는 건 아닐까요? 오늘은 그중 어느 것이 슬며시 찾아왔는지 짚어볼까요? 열여섯 가지 가운데 유독 자주 마주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헤아려 보면 좋겠어요.

2 하나하나 알아보고 놓아 버리다 4구절

마음을 물들이는 열여섯 가지를 하나하나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놓아 버리는 대목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는 ‘삐뚤어진 탐욕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삐뚤어진 탐욕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악의는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악의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성냄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성냄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원한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원한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Sa kho so, bhikkhave, bhikkhu ‘abhijjhāvisamalobho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abhijjhāvisamalob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byāpād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byāpād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kod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kod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upanā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upanā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열여섯 가지를 늘어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부처님은 수행자가 그 오염을 하나씩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대목은 삐뚤어진 탐욕과 악의, 성냄과 원한 네 가지를 다룹니다. 형식은 매번 같습니다. 먼저 "이것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다음 그것을 버립니다.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알아본 뒤에 놓는 수행이라는 점이 이 반복되는 문형에 담겨 있습니다.

묵상

화가 치밀 때, 그 감정을 없애려 애쓰기 전에 먼저 "이것이 성냄이다"라고 알아본 적이 있나요? 오늘 마음에 이는 것 하나만이라도 이름부터 붙여 볼까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감정과 나 사이에 약간의 거리가 생기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남을 깎아내림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남을 깎아내리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남과 맞서 자기를 내세움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남과 맞서 자기를 내세우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질투는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질투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인색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인색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makk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akk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paḷās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paḷās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issā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iss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macchariyaṁ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acchariy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이어서 남을 깎아내리는 마음, 남과 맞서 자기를 내세우는 마음, 질투, 인색을 같은 방식으로 알아보고 버립니다. 겉으로는 남을 향한 말이나 태도로 보이지만, 그 뿌리는 모두 자기 안의 오염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를 깎아내리며 얻는 안도감이나 남과 견주어 자신을 세우려는 마음도 예외 없이 알아보고 놓아야 할 대상으로 놓입니다. 앞서 나온 네 가지와 마찬가지로, 정확히 알아보는 과정 없이는 버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되풀이됩니다.

묵상

누군가와 나를 견주며 우쭐하거나 움츠러든 순간,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들여다본 적이 있나요? 비교하는 마음이 일 때 잠시 멈추어 살펴보면 어떨까요? 나를 낮추어 보이게 만든 그 비교가 정말 사실이었는지도 다시 물어보면 좋겠어요.

“‘속임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속임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위선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위선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완고함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완고함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공격성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공격성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māyā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āy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sāṭheyyaṁ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sāṭheyy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thamb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thamb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sāramb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sāramb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속임과 위선, 완고함과 공격성이 이어집니다. 속임은 없는 것을 있는 척하는 것이고 위선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이니, 둘 다 자기를 실제와 다르게 꾸미는 마음입니다. 완고함은 잘못을 알고도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이고 공격성은 쉽게 날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넷도 앞서와 똑같이 먼저 오염임을 알고 그 자리에서 버리는 방식으로 다루어집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지만, 자신을 실제와 다르게 보이려 하거나 남 앞에서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묵상

내가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고집을 꺾지 못했던 순간이 있나요? 그 완고함의 뿌리를 한번 들여다볼까요?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물러서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는지도 함께 헤아려 보면 좋겠어요.

“‘자만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자만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거만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거만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들뜬 취기는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들뜬 취기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게으름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게으름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느니라.”

‘mān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ān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atimān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atimān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mad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ad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pamād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pamād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마지막 네 가지, 자만과 거만, 들뜬 취기와 방일이 마무리됩니다. 자만은 스스로를 실제보다 높이 여기는 마음이고 거만은 남을 낮추어 보는 마음이며, 들뜬 취기는 젊음이나 건강, 성취에 취해 우쭐해지는 것이고 방일은 해야 할 일을 미루며 마음을 놓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여섯 가지 모두를 알아보고 버리는 과정이 끝나면, 다음 대목에서는 이 버림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됩니다.

묵상

지금 가진 것에 취해 정작 살펴야 할 것을 미루고 있지는 않나요? 방심하고 있던 자리가 있다면 오늘 한 번 들여다볼까요? 성취나 젊음, 건강처럼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조심스레 다루어야 할 것들인지도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3 버림을 완성하다 4구절

열여섯 가지 오염을 실제로 버린 사실을 다시 하나하나 확인하는 대목

“수행자가 ‘삐뚤어진 탐욕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리고, ‘악의는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리며, ‘성냄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리고, ‘원한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린다.”

Yato kho, bhikkhave, bhikkhuno ‘abhijjhāvisamalobho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abhijjhāvisamalobho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byāpād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byāpādo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kod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kodho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upanā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upanāho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앞서 하나씩 알아보고 버렸던 오염이, 이번에는 실제로 버려졌다는 사실로 다시 확인됩니다. 삐뚤어진 탐욕과 악의, 성냄과 원한이 마음에서 사라졌음을 짚습니다. 같은 내용을 두 번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이 "알고 버리는" 과정이라면 이 대목은 그 결과가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다시 짚어 보는 자리입니다. 말로 다짐하는 것과 실제로 마음에서 사라진 것은 다르기에, 경은 이 둘을 굳이 나누어 확인합니다. 원문이 되풀이하는 구조를 그대로 살려 옮겼습니다.

묵상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놓았다고 생각한 뒤, 정말 그것이 사라졌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본 적이 있나요? 비슷한 상황이 다시 찾아왔을 때 예전과 다르게 반응한 나를 발견한 적이 있다면, 그 순간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남을 깎아내림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리고, ‘남과 맞서 자기를 내세움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리며, ‘질투는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리고, ‘인색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린다.”

‘makk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akkho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paḷās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paḷāso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issā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iss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macchariyaṁ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acchariya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남을 깎아내리는 마음과 자기를 내세우는 마음, 질투와 인색도 버려졌음이 확인됩니다. 알아본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버려졌는지를 다시 짚는 이 구조는, 마음의 변화가 한 번의 다짐이 아니라 되짚어 확인할 만큼 분명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겉으로 드러나던 말투나 태도가 아니라, 그 마음 자체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원문이 앞 대목과 같은 문형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묵상

질투나 인색한 마음이 정말 옅어졌는지, 비슷한 상황이 다시 왔을 때 스스로 확인해 본 적이 있나요? 누군가의 성취를 예전보다 편안하게 축하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변화가 언제부터였는지도 돌아보면 좋겠어요.

“‘속임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리고, ‘위선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리며, ‘완고함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리고, ‘공격성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린다.”

‘māyā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āy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sāṭheyyaṁ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sāṭheyya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thamb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thambho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sāramb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sārambho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속임과 위선, 완고함과 공격성도 같은 방식으로 버려졌음이 확인됩니다. 겉을 꾸미던 마음과 고집을 부리던 마음이 실제로 가라앉았는지를 짚는 대목입니다. 오염이 남아 있는 채로는 뒤에 나올 확신도 온전할 수 없기에, 경은 순서를 건너뛰지 않습니다. 열여섯 가지 가운데 열두 가지를 지나오는 동안 원문의 문형은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이 확인이 있고 나서야 다음에 이어지는 붓다와 가르침과 수행 공동체에 대한 확신이 나옵니다.

묵상

고집스럽던 마음이 누그러진 뒤, 예전 같으면 날을 세웠을 상황에서 스스로 달라졌음을 느낀 적이 있나요? 그런 변화를 알아차렸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도 함께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자만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리고, ‘거만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리며, ‘들뜬 취기는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리고, ‘게으름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고 그것을 버린다.”

‘mān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āno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atimān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atimāno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mad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mado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pamād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pamādo cittassa upakkileso pahīn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자만과 거만, 들뜬 취기와 방일까지 열여섯 가지 모두가 버려졌음이 확인되면서 이 되짚음이 마무리됩니다. 열여섯 가지를 하나하나 되짚는 이 긴 과정은, 마음을 씻는 일이 한순간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렇게 오염을 버린 수행자는 이제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출 자리에 이릅니다. 다음 대목부터는 그 확신이 붓다와 가르침과 수행 공동체를 향해 차례로 펼쳐집니다.

묵상

방심하던 자리를 다잡은 뒤, 마음이 한결 든든해진 경험이 있나요? 그 든든함이 어디서 오는지 느껴본 적이 있나요? 놓아 버렸던 것이 다시 슬며시 돌아오려 할 때, 이번에는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4 믿음에서 기쁨으로, 마음이 한곳에 모이기까지 6구절

오염을 버린 비구가 붓다와 가르침과 수행 공동체에 대한 확신을 갖추고 기쁨에서 삼매로 나아가는 과정

“그는 깨달은 이에 대해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춘다. ‘참으로 세존께서는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 명지와 실천을 갖추신 분, 잘 가신 분, 세상을 아시는 분, 길들여야 할 사람을 이끄는 위없는 분, 신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세존이시다.’”

So budd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itipi so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ṁ buddho bhagavā’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열여섯 가지 오염을 버린 수행자는 깨달은 이, 즉 붓다에 대해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춥니다. 그 확신의 내용은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 명지와 실천을 갖추신 분, 잘 가신 분, 세상을 아시는 분, 길들여야 할 사람을 이끄는 위없는 분, 신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세존"이라는 아홉 가지 호칭으로 표현됩니다. 여러 경전에 되풀이되는 정형구로, 붓다라는 존재를 여러 각도에서 확인하는 문장입니다.

묵상

흔들림 없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어떤 마음의 든든함을 주나요? 그런 확신을 언제 느껴보았나요? 힘든 시기를 지날 때 그 믿음이 어떻게 힘이 되어 주었는지도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그는 가르침에 대해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춘다. ‘세존께서 가르침을 잘 설하셨다.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있고,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하고, 안으로 이끌며, 지혜로운 이가 저마다 직접 알 수 있다.’”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ṁ veditabbo viññūhī’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이어서 가르침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이 나옵니다. 그 가르침은 "잘 설해졌고,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있으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 와서 보라고 할 만하며, 안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가 저마다 직접 알 수 있다"고 설명됩니다. 먼 훗날의 약속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겪어 보고 알 수 있어야 진짜 확신이라는 뜻이 이 여섯 가지 표현 안에 담겨 있습니다.

묵상

머리로 믿는 것과 몸소 겪어서 아는 것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지금 여기서 직접 확인해 본 배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남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겪어 알게 되었기에 더 믿음이 갔던 경험이 있나요?

“그는 수행 공동체에 대해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춘다. ‘세존의 제자 공동체는 훌륭하게 실천하고, 곧게 실천하며, 바른 길로 실천하고, 합당하게 실천한다. 곧 네 쌍의 사람, 여덟 부류의 사람이다. 이 세존의 제자 공동체는 공양받을 만하고, 손님으로 대접받을 만하며, 보시받을 만하고, 합장받을 만한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

saṅg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uj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ñāya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sāmīci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yadidaṁ 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 purisapuggalā. Esa bhagavato sāvakasaṅgho āhuneyyo pāhuneyyo dakkhiṇeyyo añjalikaraṇīyo, anuttaraṁ puññakkhettaṁ lokassā’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세 번째로 수행 공동체에 대한 확신이 이어집니다. "훌륭하게 실천하고, 곧게 실천하며, 바른 길로 실천하고, 합당하게 실천하는" 네 쌍 여덟 부류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이며, 공양과 대접과 보시와 합장을 받을 만한 세상의 복밭이라고 설명됩니다. 붓다와 가르침에 이어 그 가르침을 함께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로 확신이 완성됩니다. 혼자 걷는 길이 아니라 함께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앞선 두 확신을 실제 삶 속에서 지탱해 주는 힘이 됩니다.

묵상

같은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힘이 된 적이 있나요? 곁에서 그런 믿음을 준 이는 누구였나요? 혼자였다면 지치고 말았을 순간을 함께여서 넘길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면 떠올려 볼까요?

“그는 이만큼 버리고 토해 내고 풀어 놓고 없애고 내려놓았기에, ‘나는 깨달은 이에 대해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뜻에서 감동을 얻고, 가르침에서 감동을 얻으며, 가르침과 이어진 기쁨을 얻는다. 기뻐하는 이에게 희열이 생기고, 희열이 있는 이의 몸은 고요해지며, 몸이 고요한 이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이의 마음은 깊이 모인다.”

Yathodhi kho panassa cattaṁ hoti vantaṁ muttaṁ pahīnaṁ paṭinissaṭṭhaṁ, so ‘budd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mhī’ti labhati atthavedaṁ, labhati dhammavedaṁ, labhati dhammūpasaṁhitaṁ pāmojjaṁ.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ṁ vedeti, sukhino cittaṁ samādhiy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오염을 이만큼 버리고 토해 내고 풀어 놓았기에 붓다에 대한 확신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에 감동과 기쁨이 차오릅니다. 그 기쁨은 저절로 다음 단계로 이어집니다. 기뻐하는 이에게 희열이 생기고, 희열이 있는 이의 몸은 고요해지며, 몸이 고요한 이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이의 마음은 깊이 모입니다. 버림에서 확신으로, 확신에서 기쁨과 삼매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묵상

무언가를 내려놓은 뒤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뻐졌던 경험이 있나요? 그 가벼움이 몸의 감각으로도 느껴졌나요? 애써 붙잡고 있던 것을 놓았을 때 몸과 마음이 함께 편안해졌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가르침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그는 ‘나는 수행 공동체에 대해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추었다’고 생각하여 뜻과 가르침에서 감동을 얻고, 가르침과 이어진 기쁨을 얻는다. 기뻐하는 이에게 희열이 생기고, 희열이 있는 이의 몸은 고요해지며, 몸이 고요한 이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이의 마음은 깊이 모인다.”

‘dhamme …pe… saṅg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mhī’ti labhati atthavedaṁ, labhati dhammavedaṁ, labhati dhammūpasaṁhitaṁ pāmojjaṁ;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ṁ vedeti, sukhino cittaṁ samādhiy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같은 흐름이 가르침과 수행 공동체에 대해서도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원문은 붓다에 대한 문장을 반복하지 않고 "가르침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고 줄인 뒤, 수행 공동체에 대한 확신에서 다시 기쁨과 희열, 고요와 행복, 삼매로 이어지는 문장을 온전히 씁니다. 붓다든 가르침이든 수행 공동체든, 그 대상이 무엇이든 확신이 깊어지면 반드시 기쁨과 고요, 행복과 삼매로 이어진다는 것을 원문의 반복 구조 자체가 보여줍니다.

묵상

믿는 대상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때, 그 믿음들이 서로를 더 단단하게 받쳐 준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여러 갈래의 믿음이 한곳으로 모여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던 경험이 있다면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또 그는 ‘나는 이만큼 버리고 토해 내고 풀어 놓고 없애고 내려놓았다’고 생각하여 뜻과 가르침에서 감동을 얻고, 가르침과 이어진 기쁨을 얻는다. 기뻐하는 이에게 희열이 생기고, 희열이 있는 이의 몸은 고요해지며, 몸이 고요한 이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이의 마음은 깊이 모인다.”

‘Yathodhi kho pana me cattaṁ vantaṁ muttaṁ pahīnaṁ paṭinissaṭṭhan’ti labhati atthavedaṁ, labhati dhammavedaṁ, labhati dhammūpasaṁhitaṁ pāmojjaṁ;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ṁ vedeti, sukhino cittaṁ samādhiy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마지막으로 붓다와 가르침과 수행 공동체를 향한 확신에 이어, 자신이 "이만큼 버리고 토해 내고 풀어 놓고 없애고 내려놓았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도 감동과 기쁨을 얻습니다. 기뻐하는 이에게 희열이 생기고, 몸이 고요해지며, 행복을 느끼고, 마침내 마음이 깊이 모여 삼매에 이릅니다. 밖을 향한 확신뿐 아니라 자기 안의 변화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 또한, 마음을 삼매로 이끄는 또 하나의 길임을 보여줍니다.

묵상

내가 스스로 이루어 낸 변화를 스스로 인정해 준 적이 있나요? 그 인정이 마음을 얼마나 든든하게 하는지 느껴본 적이 있나요? 남의 칭찬을 기다리지 않고도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말해 준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5 한량없는 마음과 안으로 하는 목욕 5구절

검소하지 않은 음식도 장애가 되지 않는 마음, 온 세상에 펼치는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 번뇌에서 풀려나 안으로 목욕하는 자리

“수행자들이여, 이처럼 계행과 마음의 바탕과 지혜를 갖춘 수행자는 검은 낟알을 골라낸 좋은 쌀밥에 여러 국과 반찬을 곁들여 먹더라도 그것이 그에게 장애가 되지 않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더럽고 때 묻은 옷감이 맑은 물을 만나 깨끗하고 환해지듯이, 또 순금이 용광로를 만나 깨끗하고 환해지듯이, 이처럼 계행과 마음의 바탕과 지혜를 갖춘 수행자는 검은 낟알을 골라낸 좋은 쌀밥에 여러 국과 반찬을 곁들여 먹더라도 그것이 그에게 장애가 되지 않느니라.”

Sa kho so, bhikkhave, bhikkhu evaṁsīlo evaṁdhammo evaṁpañño sālīnañcepi piṇḍapātaṁ bhuñjati vicitakāḷakaṁ anekasūpaṁ anekabyañjanaṁ, nevassa taṁ hoti antarāyāya. Seyyathāpi, bhikkhave, vatthaṁ saṅkiliṭṭhaṁ malaggahitaṁ acchodakaṁ āgamma parisuddhaṁ hoti pariyodātaṁ, ukkāmukhaṁ vā panāgamma jātarūpaṁ parisuddhaṁ hoti pariyodātaṁ;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evaṁsīlo evaṁdhammo evaṁpañño sālīnañcepi piṇḍapātaṁ bhuñjati vicitakāḷakaṁ anekasūpaṁ anekabyañjanaṁ, nevassa taṁ hoti antarāyāya.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계행과 마음의 바탕과 지혜를 갖춘 수행자는 검은 낟알을 골라낸 좋은 쌀밥에 여러 국과 반찬을 곁들여 먹어도 그것이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더럽던 옷감이 맑은 물을 만나 깨끗해지고 원석이던 금이 용광로를 만나 빛나듯, 마음이 이미 깨끗해진 이에게는 좋은 음식 자체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에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묵상

어떤 대상을 탓하면서, 정작 그것을 붙잡고 있는 내 마음은 살피지 않은 적이 있나요? 오늘은 대상보다 마음 쪽을 먼저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같은 상황인데도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졌던 경험이 있다면 떠올려 볼까요?

“그는 자애가 가득한 마음을 한 방향으로 펼치며 머문다. 두 번째 방향과 세 번째 방향과 네 번째 방향도 그러하다. 이와 같이 위와 아래와 사방 모든 곳, 온 세상을 향하여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도 악의도 없는 자애의 마음을 펼치며 머문다. 연민이 가득한 마음도 그와 같이 펼치며 머문다. 함께 기뻐하는 마음도 그와 같이 펼치며 머문다.”

So mettāsahagatena cetasā ekaṁ disaṁ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ṁ, tathā tatiyaṁ, tathā catutthaṁ. Iti uddhamadho tiriyaṁ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ṁ lokaṁ mett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pajjena pharitvā viharati; karuṇāsahagatena cetasā …pe… muditāsahagatena cetasā …pe…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오염을 버리고 확신을 갖춘 수행자는 이제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을 세상에 펼칩니다. 먼저 사랑이 가득한 마음을 한 방향으로, 이어 두 번째와 세 번째와 네 번째 방향으로, 위아래와 사방 모든 곳, 온 세상을 향하여 넓고 크고 한량없이 펼칩니다. 연민이 가득한 마음과 함께 기뻐하는 마음도 같은 방식으로 펼쳐진다고 원문은 되풀이 없이 줄여서 전합니다.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경계 없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이 마음은 좋아하는 이에게만 향하는 보통의 애정과는 다릅니다.

묵상

사랑과 연민뿐 아니라 남이 잘되는 일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도 내 안에서 자라고 있나요? 오늘 누군가의 기쁜 소식에 그렇게 반응해 볼 수 있을까요? 가까운 사람의 좋은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이 먼저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평정이 가득한 마음을 한 방향으로 펼치며 머문다. 두 번째 방향과 세 번째 방향과 네 번째 방향도 그러하다. 이와 같이 위와 아래와 사방 모든 곳, 온 세상을 향하여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도 악의도 없는 평정의 마음을 펼치며 머문다.”

upekkhāsahagatena cetasā ekaṁ disaṁ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ṁ, tathā tatiyaṁ, tathā catutthaṁ. Iti uddhamadho tiriyaṁ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ṁ lokaṁ upekkh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pajjena pharitvā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마지막 한량없는 마음인 평온이 이어집니다. 앞의 세 마음과 같은 방식으로 한 방향에서 시작해 위아래와 사방 모든 곳, 온 세상을 향해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도 악의도 없는 평온의 마음을 펼치며 머뭅니다. 사랑과 연민과 함께 기뻐함이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라면, 평온은 그 모두를 감싸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이 이 평온에서 비로소 한자리에 모이며 완성됩니다.

묵상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이 얼마나 다르게 기울어지나요? 그 기울기를 조금씩 고르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그는 이렇게 안다. ‘이것이 있고, 이보다 낮은 것이 있으며, 이보다 뛰어난 것이 있고, 이 인식의 영역을 넘어서는 벗어남이 있다.’ 그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볼 때,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마음이 풀려나고, 존재의 번뇌에서 마음이 풀려나며, 무지의 번뇌에서 마음이 풀려난다.”

So ‘atthi idaṁ, atthi hīnaṁ, atthi paṇītaṁ, atthi imassa saññāgatassa uttari nissaraṇan’ti pajānāti.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수행자는 이제 "이것이 있고, 이보다 낮은 것이 있으며, 이보다 뛰어난 것이 있고, 이 인식의 영역을 넘어서는 벗어남이 있다"고 압니다. 이렇게 알고 볼 때 감각적 욕망의 번뇌와 존재의 번뇌, 무지의 번뇌에서 마음이 풀려납니다. 한량없는 마음조차 도달의 끝이 아니라, 그보다 더 나아간 벗어남이 있음을 짚은 뒤에야 실제 번뇌로부터의 풀려남이 서술됩니다. 아무리 넓고 한량없는 마음이라 해도 여전히 인식의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 그 너머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됩니다.

묵상

좋은 마음 상태에조차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편안함이나 안정감처럼 좋게 느껴지는 상태에도 슬며시 매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면 어떨까요?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생기느니라. 그는 이렇게 아느니라.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이를 두고 ‘안으로 하는 목욕으로 씻은 수행자’라 하느니라.”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sināto antarena sinānenā’”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스스로 생깁니다. 수행자는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압니다. 부처님은 이를 두고 "안으로 하는 목욕으로 씻은 수행자"라 부르십니다. 경의 첫머리에서 시작한 옷감을 씻는 비유가 여기서 마음을 씻는다는 말로 완성됩니다. 물이 아니라 알아차림과 놓아 버림이 마음을 씻어 낸다는 것을, 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비유로 이어 갑니다.

묵상

몸을 씻는 것과 마음을 씻는 것, 둘 중 요즘 내가 더 소홀히 하는 쪽은 어느 쪽인가요? 오늘 하루를 마치며 마음에 남은 것을 가만히 씻어 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부터 가만히 찾아보아도 좋겠어요.

6 강물이 씻지 못하는 것 8구절

성스러운 강의 목욕보다 진실한 행위가 사람을 깨끗하게 한다는 마지막 문답

그때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이 세존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었다. 그가 세존께 여쭈었다. “고따마 존자께서도 바후까강에 목욕하러 가십니까?” “바라문이여, 바후까강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바후까강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고따마 존자여, 많은 사람이 바후까강을 천상 세계로 이끄는 강, 공덕이 있는 강으로 여깁니다. 많은 사람이 바후까강에서 자기가 지은 악행을 씻어 보냅니다.”

Tena kho pana samayena sundarikabhāradvājo brāhmaṇo bhagavato avidūre nisinno hoti. Atha kho sundarikabhāradvājo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gacchati pana bhavaṁ gotamo bāhukaṁ nadiṁ sināyitun”ti? “Kiṁ, brāhmaṇa, bāhukāya nadiyā? Kiṁ bāhukā nadī karissatī”ti? “Lokkhasammatā hi, bho gotama, bāhukā nadī bahujanassa, puññasammatā hi, bho gotama, bāhukā nadī bahujanassa, bāhukāya pana nadiyā bahujano pāpakammaṁ kataṁ pavāhetī”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이 대목은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이 부처님께 바후까강에 목욕하러 가시느냐고 여쭈면서 시작됩니다. 그 강이 사람을 천상 세계로 이끌고 공덕을 준다고 믿어, 강물에 몸을 담가 지은 악행을 씻어 보낸다는 것이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믿음이었습니다. 부처님은 그 강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되물으시며, 장소와 의식이 지닌 힘이 아니라 그 물음 자체에 이미 답의 방향을 담아 놓으십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그 답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묵상

잘못을 바로잡는 대신 마음이 편해지는 의식이나 말로 책임을 대신하려 한 적은 없나요?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 보면 어떨까요? 겉으로 치르는 절차와 실제로 달라지는 마음은 얼마나 같았는지도 헤아려 볼까요?

그러자 세존께서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바후까강과 아디깍까강, 가야와 순다리까강, 사라사띠강과 빠야가강, 그리고 바후마띠강에 어리석은 이가 늘 뛰어들더라도 어두운 행위는 깨끗해지지 않느니라.”

Atha kho bhagavā sundarikabhāradvājaṁ brāhmaṇaṁ gāthāhi ajjhabhāsi: “Bāhukaṁ adhikakkañca, gayaṁ sundarikaṁ mapi; Sarassatiṁ payāgañca, atho bāhumatiṁ nadiṁ; Niccampi bālo pakkhando, kaṇhakammo na sujjha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부처님은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에게 게송으로 답하십니다. 바후까강과 아디깍까강, 가야와 순다리까강, 사라사띠강과 빠야가강, 바후마띠강까지 당시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강 이름을 나란히 열거한 뒤, 어리석은 이가 아무리 자주 그 강물에 몸을 담가도 어두운 행위는 씻기지 않는다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강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형식 자체가, 어느 강도 예외가 아님을 강조합니다.

묵상

이름난 장소나 특별한 의식이 마음의 짐을 대신 씻어 줄 거라 기대해 본 적이 있나요? 정작 그 기대 뒤에 실제로 달라진 것은 얼마나 있었는지도 함께 돌아보면 좋겠어요. 그런 기대가 어긋났을 때 다음에는 어디에서 답을 찾았는지도 떠올려 볼까요?

“순다리까강이 무엇을 하며, 빠야가강과 바후까강이 무엇을 하겠는가? 원한을 품고 죄를 지은 사람,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씻어 줄 수 없느니라. 마음이 깨끗한 이에게는 언제나 봄 축제이고, 마음이 깨끗한 이에게는 언제나 포살일이니라. 마음이 깨끗하고 행위가 맑은 이에게는 서원이 언제나 이루어지느니라.”

Kiṁ sundarikā karissati, Kiṁ payāgā kiṁ bāhukā nadī; Veriṁ katakibbisaṁ naraṁ, Na hi naṁ sodhaye pāpakamminaṁ. Suddhassa ve sadā phaggu, Suddhassuposatho sadā; Suddhassa sucikammassa, Sadā sampajjate vataṁ;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게송은 이어서 순다리까강과 빠야가강, 바후까강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되물으며, 원한을 품고 죄를 지은 사람,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강물이 씻어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마음이 깨끗한 이에게는 강물을 찾아가지 않아도 "언제나 봄 축제이고 언제나 포살일"이며, 행위까지 맑은 이에게는 서원이 언제나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씻김의 기준이 장소에서 마음과 행위로 완전히 옮겨 갑니다.

묵상

특별한 날을 기다리지 않아도 마음과 행위가 맑으면 매일이 그 자체로 좋은 날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하루도 그런 하루로 만들어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축제나 기념일이 아니어도 마음이 맑았던 평범한 하루가 있었다면 떠올려 볼까요?

“바라문이여, 바로 여기에서 목욕하라. 모든 생명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라. 거짓을 말하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을 해치지 않으며,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고, 믿음이 있고 인색하지 않다면, 가야까지 가서 무엇을 하겠는가? 어느 우물이라도 그대에게 가야가 되리라.”

Idheva sināhi brāhmaṇa, Sabbabhūtesu karohi khemataṁ. Sace musā na bhaṇasi, sace pāṇaṁ na hiṁsasi; Sace adinnaṁ nādiyasi, saddahāno amaccharī; Kiṁ kāhasi gayaṁ gantvā, udapānopi te gayā”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부처님은 바라문에게 "바로 여기에서 목욕하라, 모든 생명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을 해치지 않으며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고 믿음이 있고 인색하지 않다면, 굳이 가야강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우물이라도 그대에게 가야가 되리라"는 마지막 구절은 진실한 행위 앞에서는 어디든 성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묵상

거짓 없이, 해치지 않고, 훔치지 않고, 인색하지 않게 사는 것, 오늘 하루 이 네 가지 가운데 가장 마음을 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먼 곳을 찾아 나서기 전에 지금 서 있는 그 자리부터 돌아보면 어떨까요?

이렇게 말씀하시자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이 세존께 여쭈었다.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여. 훌륭하십니다. 마치 넘어진 것을 바로 세우고, 가려진 것을 드러내며,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주고, ‘눈 있는 이는 모습을 보라’며 어둠 속에 등불을 든 것처럼,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방편으로 가르침을 밝혀 주셨습니다.”

Evaṁ vutte, sundarikabhāradvājo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abhikkantaṁ, bho gotama, abhikkantaṁ, bho gotama.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ṁ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ṁ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ṁ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ṁ dhāreyya—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ṁ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게송을 들은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여" 하고 감탄합니다. 넘어진 것을 바로 세우고, 가려진 것을 드러내며,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든 것 같다는 네 가지 비유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합니다. 논쟁에서 진 사람의 반응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발견한 사람의 감탄에 가깝습니다. 강물로 죄를 씻으려던 자신의 생각이 부정당했는데도, 바라문의 말에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순수한 감탄이 담겨 있습니다.

묵상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체면을 지키는 쪽과 그 자리에서 인정하는 쪽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 왔나요? 그 선택이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도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저는 고따마 존자와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에 귀의합니다. 제가 고따마 존자 앞에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 앞에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았다.

Esāhaṁ bhavantaṁ gotamaṁ saraṇaṁ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Labheyyāhaṁ bhoto gotamassa santike pabbajjaṁ, labheyyaṁ upasampadan”ti. Alattha kho sundarikabhāradvājo brāhmaṇo bhagavato santike pabbajjaṁ, alattha upasampadaṁ.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바라문은 "고따마 존자와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에 귀의합니다"라고 말하며 출가와 구족계를 청합니다. 그의 청은 곧바로 받아들여져,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 앞에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습니다. 붓다와 가르침과 수행 공동체에 귀의한다는 말은 앞서 다른 대목에서 오염을 버린 수행자가 갖추었던 확신과 같은 세 대상을 향합니다. 강물로 씻으려던 바라문이 부처님의 답을 듣고 스스로 승가에 몸을 담그는 자리입니다.

묵상

어떤 가르침을 듣고 삶의 방향을 바꾸어 본 적이 있나요?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지금 돌아보면 그 결정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그리고 그때의 나에게 지금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은지도 헤아려 보면 좋겠어요.

구족계를 받은 지 오래되지 않아 바라드와자 존자는 홀로 물러나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굳세게 머물렀다.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바르게 나아가는 그 위없는 목적, 청정한 삶의 완성을 오래지 않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분명히 알고 실현하여 머물렀다.

Acirūpasampanno kho panāyasmā bhāradvājo eko vūpakaṭṭho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nacirasseva—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nti, tadanuttaraṁ—brahmacariyapariyosāna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구족계를 받은 지 오래지 않아 바라드와자 존자는 홀로 물러나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굳세게 머뭅니다.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그 위없는 목적, 청정한 삶의 완성을 오래지 않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분명히 알고 실현하여 머뭅니다. 출가를 청하는 것과 실제로 그 목적을 이루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홀로 감당해야 할 정진의 시간이 있었음을 이 대목은 짧지만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강가에서의 질문 하나가 실제 수행의 완성으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묵상

머리로 이해한 가르침을 실제로 몸에 익히기까지, 나는 얼마나 꾸준히 정진해 왔나요? 알게 된 것과 실제로 살아 내는 것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무엇일까요?

그는 분명히 알았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바라드와자 존자는 아라한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abbhaññāsi. Aññataro kho panāyasmā bhāradvājo arahataṁ ahosīti.

맛지마 니까야 MN 7 옷감의 비유경 (Vatthasutta)

배경

바라드와자 존자는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스스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아라한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고, 이로써 옷감의 비유경이 끝을 맺습니다. 경의 첫머리에서 물든 옷감으로 시작된 비유가, 강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완성된 삶으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강물로 죄를 씻으려던 바라문이 경의 끝에서는 스스로 깨끗해진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묵상

질문 하나로 시작된 대화가 삶 전체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 지금 내 마음속에는 그런 질문이 있나요?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지 가만히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