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께서는 손바닥만 한 작은 돌을 집어 드시고 물으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이 돌과 산들의 왕 히말라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가?” “존자시여, 이 돌은 아주 작습니다. 히말라야와 견주면 셈에도 들지 않고, 한 조각에도 못 미치며,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삼백 자루 창의 괴로움도 지옥의 괴로움과 견주면 셈에도 들지 않고, 한 조각에도 못 미치며, 비교조차 되지 않느니라.”
Atha kho bhagavā parittaṁ pāṇimattaṁ pāsāṇaṁ gahetvā bhikkhū āmantesi: “Taṁ kiṁ maññatha, bhikkhave, katamo nu kho mahantataro—yo cāyaṁ mayā paritto pāṇimatto pāsāṇo gahito, yo ca himavā pabbatarājā”ti? “Appamattako ayaṁ, bhante, bhagavatā paritto pāṇimatto pāsāṇo gahito, himavantaṁ pabbatarājānaṁ upanidhāya saṅkhampi na upeti, kalabhāgampi na upeti, upanidhampi na upe”ti. “Evameva kho, bhikkhave, yaṁ so puriso tīhi sattisatehi haññamāno tatonidānaṁ dukkhaṁ domanassaṁ paṭisaṁvedeti taṁ nirayakassa dukkhassa upanidhāya saṅkhampi na upeti, kalabhāgampi na upeti, upanidhampi na upeti.
맛지마 니까야 MN 129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의 경 (Bālapaṇḍitasutta)배경
세존은 손바닥 크기의 돌을 실제로 들고 히말라야와 비교하는 질문을 냅니다. 수행자들의 답과 세존의 적용은 “셈에 들지 않음·한 조각에도 못 미침·비교가 되지 않음”이라는 세 부정을 같은 순서로 반복합니다. 앞에서 상상할 수 있는 큰 고통으로 제시한 삼백 자루 창은 여기서 작은 돌의 자리에 놓이고, 지옥의 괴로움이 산의 자리에 놓입니다. 수사적 비교의 목적은 공포를 즐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결과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작은 돌과 거대한 산의 대비가 말로 다 담기 어려운 차이를 보여 주는 방식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무서운 장면에 오래 머물지 말고, 해로운 결과를 작게 여기지 말라는 한 가지 뜻만 받아들여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