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그 외눈 거북이 한 구멍 난 멍에에 목을 넣는 편이 더 빠르니라. 한 번 나쁜 곳에 떨어진 어리석은 자가 인간으로 태어나는 일은 그보다 더 어렵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왜 그런가? 그곳에는 가르침에 따른 행위도, 고른 행위도, 유익한 행위도, 공덕의 행위도 없느니라. 서로 잡아먹고 약한 이를 잡아먹는 일만 벌어지느니라.”
“Khippataraṁ kho so, bhikkhave, kāṇo kacchapo amusmiṁ ekacchiggale yuge gīvaṁ paveseyya, ato dullabhatarāhaṁ, bhikkhave, manussattaṁ vadāmi sakiṁ vinipātagatena bālena. Taṁ kissa hetu? Na hettha, bhikkhave, atthi dhammacariyā samacariyā kusalakiriyā puññakiriyā. Aññamaññakhādikā ettha, bhikkhave, vattati dubbalakhādikā.
맛지마 니까야 MN 129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의 경 (Bālapaṇḍitasutta)배경
비유의 적용은 거북의 희귀한 성공이 오히려 더 빠르다고 말해 인간으로 돌아옴의 어려움을 강조합니다. 이유에는 dhammacariyā·samacariyā·kusalakiriyā·puññakiriyā, 곧 가르침에 따른 행위·고른 행위·능숙한 행위·공덕의 행위 네 항목이 각각 부정됩니다. 이어 서로 잡아먹음과 약한 이를 잡아먹음의 두 폭력이 놓입니다. 네 좋은 행위와 두 폭력을 줄이지 않아, 인간만이 가치 있다는 선언보다 선하고 공덕 있는 행위를 선택할 조건이 매우 귀하다는 논지가 드러납니다.
묵상
네 좋은 행위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인간 삶의 희귀함을 설명한다는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 시간을 낭비했다는 자책보다, 오늘 가능한 능숙하거나 공덕 있는 작은 행동 하나를 부담 없이 떠올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