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의 원인이 자기에게 없음을 확인하다

앞서 온전히 반복된 형벌 목록을 한 번 줄이고, 그 원인이 되는 행위가 자신에게 없고 자신도 거기서 드러나지 않는다고 확인합니다.

“그 현명한 자는 생각하느니라. ‘왕들이 나쁜 행위 때문에 범죄자에게 채찍질부터 … 참수까지 여러 형벌을 내린다. 그러나 그런 행위들은 내게 없고, 나도 그런 행위들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현명한 자가 바로 이 삶에서 겪는 두 번째 즐거움과 기쁨이니라.”

Tatra, bhikkhave, paṇḍitassa evaṁ hoti: ‘yathārūpānaṁ kho pāpakānaṁ kammānaṁ hetu rājāno coraṁ āgucāriṁ gahetvā vividhā kammakāraṇā kārenti … na te dhammā mayi saṁvijjanti, ahañca na tesu dhammesu sandissāmī’ti. Idampi, bhikkhave, paṇḍito dutiyaṁ diṭṭheva dhamme sukhaṁ somanassaṁ paṭisaṁvedeti.

맛지마 니까야 MN 129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의 경 (Bālapaṇḍitasutta)

배경

이 생각은 바로 앞에서 온전히 읽은 채찍질부터 참수까지의 목록을 다시 모두 반복한 뒤, “그 행위들은 내게 없고 나도 거기서 드러나지 않는다”는 두 부정을 둡니다. 같은 긴 목록만 일반 생략 “…”로 줄였고, 그 뒤의 두 부정과 둘째 결산은 보존했습니다. 이 표시는 앞 대목의 목록 전체가 같은 자리에 이어짐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기쁨의 원인은 처벌받지 않는 운이 아니라 그 형벌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를 실제로 하지 않아 두려울 까닭이 없는 데 있습니다.

묵상

“내게 없다”와 “나도 거기서 드러나지 않는다”는 두 부정은 어떤 안도감을 주나요? 완벽한 사람인지 따지지 말고, 지금 한 가지 해로운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조용한 편안함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