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은 악과 지은 선을 떠올리며 안심하다

악·폭력·죄는 하지 않고 선·능숙함·보호의 일을 했다고 생각하며, 다섯 괴로운 반응을 모두 부정하고 셋째 기쁨을 겪습니다.

“그는 생각하느니라. ‘나는 악·폭력·죄는 짓지 않았고 선·유익함·두려움에서 지켜 주는 일은 했다. 이와 같이 세 가지 악은 짓지 않고 세 가지 선을 행한 이들이 죽은 뒤 가는 곳으로 나도 갈 것이다.’ 그는 슬퍼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고, 탄식하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고, 혼란에 빠지지 않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현명한 자가 바로 이 삶에서 겪는 세 번째 즐거움과 기쁨이니라.”

Tatra, bhikkhave, paṇḍitassa evaṁ hoti: ‘akataṁ vata me pāpaṁ, akataṁ luddaṁ, akataṁ kibbisaṁ; kataṁ kalyāṇaṁ, kataṁ kusalaṁ, kataṁ bhīruttāṇaṁ. Yāvatā, bho, akatapāpānaṁ akataluddānaṁ akatakibbisānaṁ katakalyāṇānaṁ katakusalānaṁ katabhīruttāṇānaṁ gati taṁ gatiṁ pecca gacchāmī’ti. So na socati, na kilamati, na paridevati, na urattāḷiṁ kandati, na sammohaṁ āpajjati. Idampi, bhikkhave, paṇḍito tatiyaṁ diṭṭheva dhamme sukhaṁ somanassaṁ paṭisaṁvedeti.

맛지마 니까야 MN 129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의 경 (Bālapaṇḍitasutta)

배경

어리석은 자의 후회문이 여섯 항목 모두 반대로 놓입니다. 악·폭력·죄의 세 가지는 “하지 않았다”고 하고, 선·능숙함·두려움에서 지켜 줌의 세 가지는 “했다”고 합니다. 이어 슬픔·괴로움·탄식·가슴을 치며 울부짖음·혼란의 다섯 반응도 na를 각각 붙여 모두 부정합니다. 이 부정은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현명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아닙니다. 여기서 기쁨의 조건은 실제로 해로운 일을 삼가고 보호하는 일을 행했다는 구체적 과거입니다.

묵상

하지 않은 해와 실제로 한 선을 함께 떠올릴 때 마음에 어떤 차이가 생기나요? 괴로운 감정이 있다고 자신을 평가하지 말고, 오늘 이미 지킨 것과 도운 것 가운데 사실대로 인정할 수 있는 하나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