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께서는 손바닥만 한 작은 돌을 집어 수행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돌과 산들의 왕 히말라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큽니까?” “이 돌은 아주 작아 히말라야와 견주면 셈에도 들지 않고, 한 조각에도 못 미치며,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전륜왕이 일곱 보물과 네 복 때문에 겪는 즐거움도 그와 같습니다. 천상의 행복에 견주면 셈에도 들지 않고, 한 조각에도 못 미치며,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Atha kho bhagavā parittaṁ pāṇimattaṁ pāsāṇaṁ gahetvā bhikkhū āmantesi: “Taṁ kiṁ maññatha, bhikkhave, katamo nu kho mahantataro—yo cāyaṁ mayā paritto pāṇimatto pāsāṇo gahito yo ca himavā pabbatarājā”ti? “Appamattako ayaṁ, bhante, bhagavatā paritto pāṇimatto pāsāṇo gahito; himavantaṁ pabbatarājānaṁ upanidhāya saṅkhampi na upeti; kalabhāgampi na upeti; upanidhampi na upetī”ti. “Evameva kho, bhikkhave, yaṁ rājā cakkavattī sattahi ratanehi samannāgato catūhi ca iddhīhi tatonidānaṁ sukhaṁ somanassaṁ paṭisaṁvedeti taṁ dibbassa sukhassa upanidhāya saṅkhampi na upeti; kalabhāgampi na upeti; upanidhampi na upeti.
맛지마 니까야 MN 129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의 경 (Bālapaṇḍitasutta)배경
지옥의 괴로움을 비교할 때 썼던 손바닥 크기의 돌과 히말라야가 하늘의 행복에도 대칭적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수행자들의 답과 세존의 적용은 셈에 들지 않음·한 조각에도 못 미침·비교가 되지 않음의 세 부정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이번에는 작은 돌 자리에 일곱 보물과 네 복을 갖춘 전륜왕의 즐거움이, 히말라야 자리에는 천상의 행복이 놓입니다. 인간의 행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보다 더 큰 결과를 상상하게 하는 구조입니다.
묵상
같은 돌과 산의 비유가 고통과 행복 양쪽에 쓰이는 대칭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현재의 기쁨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 기쁨이 더 넓은 선한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