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뿌리

끝없는 갈망의 본질과 그 다스림

“수행자들이여,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을 일으키거나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을 더욱 늘리고 키우는 것으로서, 수행자들이여, 아름다움의 표상만 한 것을 나는 달리 하나도 보지 못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아름다움의 표상에 이치에 맞지 않게 마음을 기울일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은 더욱 늘어나고 커지느니라.”

“Nāhaṁ, bhikkhave, aññaṁ ekadhammampi samanupassāmi yena anuppanno vā kāmacchando uppajjati uppanno vā kāmacchando bhiyyobhāvāya vepullāya saṁvattati yathayidaṁ, bhikkhave, subhanimittaṁ. Subhanimittaṁ, bhikkhave, ayoniso manasi karoto anuppanno ceva kāmacchando uppajjati uppanno ca kāmacchando bhiyyobhāvāya vepullāya saṁvatta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1.11 아름다운 표상경

배경

장애를 버리는 품의 첫 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먼저 아름다움의 표상만큼 감각적 욕망을 일으키고 키우는 다른 한 가지도 보지 못한다고 밝히시고, 다음 문장에서 그 인과를 다시 풀어 완결하십니다. subhanimitta는 ‘아름다움의 표상’, ayoniso manasi karoto는 거기에 ‘이치에 맞지 않게 마음을 기울일 때’를 뜻합니다. 아직 생기지 않은 욕망은 ‘일어나고’, 이미 생긴 욕망은 ‘더욱 늘어나고 커진다’는 두 경우와 두 결과가 구별됩니다. 그러므로 이 대목의 수행 의미는 아름답다고 느낀 사실을 탓하는 데 있지 않고, 그 표상에 마음을 기울이는 방식이 욕망의 발생과 증대에 어떤 조건이 되는지 분명히 아는 데 있습니다.

묵상

‘아름다움의 표상’에 마음이 오래 머물 때, 아직 없던 감각적 욕망이 생기는 순간과 이미 있던 욕망이 커지는 순간을 구별해 알아차릴 수 있나요? 어느 쪽도 분명하지 않다면 판단하지 않은 채 지금 마음이 무엇에 머무는지만 살펴보아도 괜찮아요.

비구들이여, 갈애를 벗으로 삼고 이 기나긴 윤회를 떠도는 자는 이 존재로, 저 존재로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Taṇhādutiyo puriso, dīghamaddhāna saṃsāraṃ; itthabhāvaññathābhāvaṃ, saṃsāraṃ nātivattati.

이띠붓따까 Iti 15 갈애경

배경

탐욕을 "벗(dutiya)"이라 부르는 것이 통렬합니다. 우리는 갈망을 적이 아니라 친구처럼 대합니다 - "더 원하는 것이 뭐가 나쁜가", "야망이 있어야 성공한다", "갈망이 삶의 원동력이다". 부처님은 이 "벗"이 실은 당신을 끝없이 떠돌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하십니다. 이 존재에서 저 존재로, 이 직장에서 저 직장으로, 이 관계에서 저 관계로 - 상황은 바뀌지만 패턴은 반복됩니다. 갈애를 벗으로 삼고 있는 한.

묵상

가장 오래된 갈망 - 인정, 성공, 사랑, 안전 - 을 떠올려 보세요. 그것을 얼마나 오래 추구해왔나요? 채워진 적이 있나요? 채워졌다면 얼마나 오래 만족했나요? 이 패턴이 보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