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신·마라·범천이 있는 세상과 수행자·바라문·신·인간의 무리를 스스로 분명히 알아 실현하고 알립니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뜻과 표현을 갖춘 가르침을 설하고, 온전하고 청정한 청정한 삶을 밝힙니다. 그러한 아라한들을 뵙는 것은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자 짬빠의 바라문들과 장자들은 무리를 이루어 각가라 연못으로 향했습니다.
So imaṁ lokaṁ sadevakaṁ samārakaṁ sabrahmakaṁ sassamaṇabrāhmaṇiṁ pajaṁ sadevamanussaṁ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So dhammaṁ deseti ādikalyāṇaṁ majjhekalyāṇaṁ pariyosānakalyāṇaṁ sātthaṁ sabyañjanaṁ kevalaparipuṇṇaṁ parisuddhaṁ brahmacariyaṁ pakāseti. Sādhu kho pana tathārūpānaṁ arahataṁ dassanaṁ hotī”ti. Atha kho campeyyakā brāhmaṇagahapatikā campāya nikkhamitvā saṅghasaṅghī gaṇībhūtā yena gaggarā pokkharaṇī tenupasaṅkamanti.
디가 니까야 DN 4 소나단다경 (Soṇadaṇḍasutta)배경
좋은 명성의 뒷부분은 세존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밝힌 뒤, 주민들의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스스로 분명히 알아 실현함”이 먼저이고 다른 이들에게 알림이 뒤따르며, 가르침은 처음·중간·끝의 세 때와 뜻·표현의 두 측면을 모두 갖춘다고 합니다. 이어 거룩한 삶의 온전함과 청정함이 놓입니다. 마지막의 “뵙는 것이 좋다”는 평가가 실제 출발의 이유가 됩니다. 경의 흐름에서 명성은 장식이 아니라 만남을 일으키는 조건이며, 수행에서는 들은 평가를 직접 듣고 살피려는 움직임으로 바뀝니다.
묵상
좋다는 말을 듣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직접 듣거나 확인해 보고 싶어진 일이 있나요? 지금 그런 움직임이 없다면, 평판과 직접 경험 사이의 거리를 잠시 느껴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