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어떤 일로 짬빠에 머물던 여러 지방 출신의 바라문이 오백 명쯤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나단다 바라문이 수행자 고따마를 뵈러 간다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소나단다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소나단다 존자께서 수행자 고따마를 뵈러 가신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나도 수행자 고따마를 뵈러 가려고 합니다.”
Tena kho pana samayena nānāverajjakānaṁ brāhmaṇānaṁ pañcamattāni brāhmaṇasatāni campāyaṁ paṭivasanti kenacideva karaṇīyena. Assosuṁ kho te brāhmaṇā: “soṇadaṇḍo kira brāhmaṇo samaṇaṁ gotamaṁ dassanāya upasaṅkamissatī”ti. Atha kho te brāhmaṇā yena soṇadaṇḍo brāhmaṇo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soṇadaṇḍaṁ brāhmaṇaṁ etadavocuṁ: “saccaṁ kira bhavaṁ soṇadaṇḍo samaṇaṁ gotamaṁ dassanāya upasaṅkamissatī”ti? “Evaṁ kho me, bho, hoti: ‘ahampi samaṇaṁ gotamaṁ dassanāya upasaṅkamissāmī’”ti.
디가 니까야 DN 4 소나단다경 (Soṇadaṇḍasutta)배경
주민들에게 알린 방문 의사가 다른 지역에서 온 오백 명가량의 바라문에게도 전해집니다. 이들은 소문만으로 반대하지 않고 먼저 소나단다에게 가서 사실인지 묻고, 그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확인합니다. 첫 “간다고 한다”는 전언이고, 뒤의 “가려고 한다”는 당사자의 답입니다. 이 구별이 다음 만류를 정당화하려는 그들의 출발점을 보여 줍니다. 수량은 정확한 오백 명이 아니라 pañcamattāni, 곧 오백 명쯤입니다. 많은 동료의 시선이 한 사람의 선택에 압력으로 작용하는 장면이 열립니다.
묵상
여럿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내 선택을 확인받으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나요? 그 선택을 지키거나 바꿀 필요 없이, 사람 수와 시선이 주는 압박을 한 감각으로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답이 떠오르지 않으면 잠시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