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문들이 말했습니다. “소나단다 존자께서는 수행자 고따마를 뵈러 가지 마십시오. 존자께서 그를 찾아가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만일 가신다면 존자의 명성은 줄고 수행자 고따마의 명성은 커질 것입니다. 존자의 명성은 줄고 수행자 고따마의 명성은 커진다는 바로 그 이유로, 존자께서 그를 찾아가는 것은 마땅하지 않고 수행자 고따마가 소나단다 존자를 찾아오는 것이 마땅합니다.”
“Mā bhavaṁ soṇadaṇḍo samaṇaṁ gotamaṁ dassanāya upasaṅkami. Na arahati bhavaṁ soṇadaṇḍo samaṇaṁ gotamaṁ dassanāya upasaṅkamituṁ. Sace bhavaṁ soṇadaṇḍo samaṇaṁ gotamaṁ dassanāya upasaṅkamissati, bhoto soṇadaṇḍassa yaso hāyissati, samaṇassa gotamassa yaso abhivaḍḍhissati. Yampi bhoto soṇadaṇḍassa yaso hāyissati, samaṇassa gotamassa yaso abhivaḍḍhissati, imināpaṅgena na arahati bhavaṁ soṇadaṇḍo samaṇaṁ gotamaṁ dassanāya upasaṅkamituṁ; samaṇo tveva gotamo arahati bhavantaṁ soṇadaṇḍaṁ dassanāya upasaṅkamituṁ.
디가 니까야 DN 4 소나단다경 (Soṇadaṇḍasutta)배경
확인 문답 뒤 바라문들의 만류가 시작됩니다. 먼저 “가지 마십시오”라는 요청과 “마땅하지 않다”는 판단을 놓고, 방문하면 소나단다의 명성이 줄며 고따마의 명성이 커진다는 조건과 결과를 제시합니다. 그들은 이 명성의 증감을 이유로 방문 방향을 거꾸로 정합니다. 이는 경이 승인하는 예법이 아니라 동료 바라문들이 경쟁적 위신을 지키려 내세운 논리입니다. 뒤에 이어지는 긴 조건 목록도 모두 같은 결론을 지지하며, 소나단다는 그 논리의 틀을 되받아 세존을 찾아갈 이유를 말하게 됩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이 내 체면을 낮춘다고 느껴진 적이 있나요? 실제로 행동할 필요 없이, 그때 지키고 싶었던 것이 관계인지 평판인지 잠시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선명한 것이 없으면 없다고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