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함으로 버려야 할 번뇌란 무엇인가?
수행자는 지혜롭게 살펴 눈의 감각을 단속하며 머무느니라.
눈을 단속하지 않을 때 생길 괴롭고 뜨거운 번뇌는
눈을 단속할 때 생기지 않느니라.
지혜롭게 살펴 귀와 코의 감각을 단속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Katame ca, bhikkhave, āsavā saṁvarā pahātabbā? Idha, bhikkhave, bhikkhu paṭisaṅkhā yoniso cakkhundriyasaṁvarasaṁvuto viharati. Yañhissa, bhikkhave, cakkhundriyasaṁvaraṁ asaṁvutassa viharato uppajjeyyuṁ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cakkhundriyasaṁvaraṁ saṁvutassa viharato evaṁ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Paṭisaṅkhā yoniso sotindriyasaṁvarasaṁvuto viharati …pe… ghānindriyasaṁvarasaṁvuto viharati …pe…
맛지마 니까야 MN 2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을 모두 버리는 경 (Sabbāsavasutta) 배경
두 번째 방법은 감각의 문을 단속하는 일입니다. 먼저 눈을 통해 들어오는 경험에 아무 제한 없이 끌려갈 때 생기는 흥분과 괴로움을 살피고, 필요한 만큼 경계를 세웁니다. 귀와 코도 같은 방식으로 다룹니다. 감각 자체를 나쁘다고 여기거나 세상을 보지 말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순간 마음이 끌려가 번뇌의 열기로 변하는 과정을 알아차려, 경험과 자동 반응 사이에 여지를 만드는 훈련입니다.
묵상
보고 들은 뒤 마음이 오래 끌려가 뜨거워지는 대상은 무엇인가요? 그 대상을 내 삶에서 완전히 없애려 하기보다, 접하는 횟수와 방식에 작은 경계를 세우면 마음에 어떤 여유가 생길까요?
혀와 몸의 감각을 단속하며 머물고,
마음의 감각을 단속하며 머무느니라.
마음을 단속하지 않을 때 생길 괴롭고 뜨거운 번뇌는
마음을 단속할 때 생기지 않느니라.
이처럼 단속하지 않을 때 생길 번뇌가
단속할 때 생기지 않나니,
이를 단속함으로 버려야 할 번뇌라 하느니라.
jivhindriyasaṁvarasaṁvuto viharati …pe… kāyindriyasaṁvarasaṁvuto viharati …pe… manindriyasaṁvarasaṁvuto viharati. Yañhissa, bhikkhave, manindriyasaṁvaraṁ asaṁvutassa viharato uppajjeyyuṁ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manindriyasaṁvaraṁ saṁvutassa viharato evaṁ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Yañhissa, bhikkhave, saṁvaraṁ asaṁvutassa viharato uppajjeyyuṁ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saṁvaraṁ saṁvutassa viharato evaṁ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Ime vuccanti, bhikkhave, āsavā saṁvarā pahātabbā.
맛지마 니까야 MN 2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을 모두 버리는 경 (Sabbāsavasutta) 배경
앞에서 눈과 귀와 코를 보았다면 여기서는 혀로 맛보는 일과 몸의 접촉, 생각과 기억이 드나드는 마음까지 같은 원리로 단속합니다. 특히 마음도 하나의 감각 문으로 다루는 점이 중요합니다. 바깥 자극을 피했어도 머릿속에서 계속 장면을 되풀이하면 번뇌는 이어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여섯 감각을 모두 묶어, 단속하지 않을 때 생기는 괴롭고 뜨거운 상태가 단속할 때에는 생기지 않음을 결론으로 확인하십니다.
묵상
바깥 자극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마음속에서 같은 장면을 다시 재생하며 번뇌를 이어 가는 일이 있나요? 생각도 하나의 감각 문이라고 본다면, 그 문 앞에서 잠시 멈추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르게 사용함으로 버려야 할 번뇌란 무엇인가?
수행자는 지혜롭게 살펴 옷을 쓰되,
추위와 더위, 파리와 모기와 바람과 햇볕과 파충류의 접촉을 막고
부끄러운 곳을 가리는 데 필요한 만큼만 쓰느니라.
음식도 재미나 탐닉이나 치장과 꾸밈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몸을 유지하고 해침을 멈추며 청정한 삶을 돕기 위해 쓰느니라.
그리하여 묵은 불편을 그치고 새 불편을 만들지 않으며
허물없이 편안히 살아갈 힘을 얻느니라.
Katame ca, bhikkhave, āsavā paṭisevanā pahātabbā? Idha, bhikkhave, bhikkhu paṭisaṅkhā yoniso cīvaraṁ paṭisevati: ‘yāvadeva sītassa paṭighātāya, uṇhassa paṭighātāya, ḍaṁsamakasavātātapasarīsapasamphassānaṁ paṭighātāya, yāvadeva hirikopīnappaṭicchādanatthaṁ’. Paṭisaṅkhā yoniso piṇḍapātaṁ paṭisevati: ‘neva davāya, na madāya, na maṇḍanāya, na vibhūsanāya, yāvadeva imassa kāyassa ṭhitiyā yāpanāya, vihiṁsūparatiyā, brahmacariyānuggahāya, iti purāṇañca vedanaṁ paṭihaṅkhāmi navañca vedanaṁ na uppādessāmi, yātrā ca me bhavissati anavajjatā ca phāsuvihāro ca’.
맛지마 니까야 MN 2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을 모두 버리는 경 (Sabbāsavasutta) 배경
세 번째 방법은 필요한 물건을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맞게 쓰는 일입니다. 옷은 몸을 보호하고 가리기 위해, 음식은 즐거움과 과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몸을 유지하고 수행을 돕기 위해 사용합니다. 부처님은 금욕을 위한 금욕보다 사용의 의도를 점검하게 하십니다. 물건이 많고 적음만으로 번뇌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떤 목적으로 대하고 어느 지점에서 충분하다고 아는지가 마음의 자유를 가릅니다.
묵상
오늘 먹고 입은 것을 필요보다 기분 전환이나 과시를 위해 찾은 순간이 있었나요? 그것을 죄책감으로 몰아붙이지 않으면서, 바로 다음 선택에서는 본래의 필요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거처는 추위와 더위, 파리와 모기와 바람과 햇볕과 파충류를 막고
거친 날씨를 피하여 고요히 머물기 위해 쓰느니라.
병자를 위한 약과 물품은 이미 생긴 병의 아픔을 막고
건강을 돕기 위해 쓰느니라.
이것들을 쓰지 않을 때 생길 괴롭고 뜨거운 번뇌가
바르게 쓸 때 생기지 않나니,
이를 바르게 사용함으로 버려야 할 번뇌라 하느니라.
Paṭisaṅkhā yoniso senāsanaṁ paṭisevati: ‘yāvadeva sītassa paṭighātāya, uṇhassa paṭighātāya, ḍaṁsamakasavātātapasarīsapasamphassānaṁ paṭighātāya, yāvadeva utuparissayavinodanapaṭisallānārāmatthaṁ’. Paṭisaṅkhā yoniso 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aṁ paṭisevati: ‘yāvadeva uppannānaṁ veyyābādhikānaṁ vedanānaṁ paṭighātāya, abyābajjhaparamatāya’. Yañhissa, bhikkhave, appaṭisevato uppajjeyyuṁ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paṭisevato evaṁ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Ime vuccanti, bhikkhave, āsavā paṭisevanā pahātabbā.
맛지마 니까야 MN 2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을 모두 버리는 경 (Sabbāsavasutta) 배경
거처와 약에 대한 성찰이 이어지며 네 가지 생활 필수품의 가르침이 완성됩니다. 거처는 과시나 소유의 상징이 아니라 날씨와 위험을 피하고 고요히 머물기 위한 곳이며, 약은 병의 고통을 덜고 건강을 돕기 위한 수단입니다. 몸의 필요를 무시하면 오히려 괴로움과 번뇌가 생길 수 있으므로 적절히 사용해야 합니다. 절제는 무조건 참는 일이 아니라 목적을 잃지 않는 균형이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묵상
나를 보호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을 사치라고 여기며 거부한 적은 없나요? 반대로 편안함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된 것은 없나요? 지금의 몸과 마음에 필요한 균형은 어디쯤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