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릴 수 없는 찬사와 출발

소나단다가 찬사의 한계를 밝히자 바라문들이 동의하고 함께 연못으로 향함

“여러분, 내가 외운 고따마 존자의 찬사는 이만큼이지만, 그분의 덕이 이만큼뿐인 것은 아닙니다. 그분에 대한 찬사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바라문들이 말했습니다. “존자의 말씀대로라면 고따마 존자가 백 요자나 밖에 머물더라도, 신실한 집안사람은 식량 자루를 메고서라도 뵈러 갈 만합니다.” 소나단다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 모두 수행자 고따마를 뵈러 갑시다.” 그는 큰 바라문 무리와 함께 각가라 연못으로 갔습니다.

Ettake kho ahaṁ, bho, tassa bhoto gotamassa vaṇṇe pariyāpuṇāmi, no ca kho so bhavaṁ gotamo ettakavaṇṇo. Aparimāṇavaṇṇo hi so bhavaṁ gotamo”ti. Evaṁ vutte, te brāhmaṇā soṇadaṇḍaṁ brāhmaṇaṁ etadavocuṁ: “yathā kho bhavaṁ soṇadaṇḍo samaṇassa gotamassa vaṇṇe bhāsati ito cepi so bhavaṁ gotamo yojanasate viharati, alameva saddhena kulaputtena dassanāya upasaṅkamituṁ api puṭosenā”ti. “Tena hi, bho, sabbeva mayaṁ samaṇaṁ gotamaṁ dassanāya upasaṅkamissāmā”ti. Atha kho soṇadaṇḍo brāhmaṇo mahatā brāhmaṇagaṇena saddhiṁ yena gaggarā pokkharaṇī tenupasaṅkami.

디가 니까야 DN 4 소나단다경 (Soṇadaṇḍasutta)

배경

소나단다는 자신이 외워 아는 찬사는 한정되어 있지만 세존의 덕은 그 한계에 갇히지 않는다고 반론을 맺습니다. 바라문들은 태도를 바꾸어 거리가 백 요자나라도, 스스로 식량 자루를 져야 하더라도 신실한 사람이면 찾아갈 만하다고 응답합니다. 실제 거리를 말한 것이 아니라 찾아갈 가치의 크기를 강조하는 조건문입니다. 소나단다는 “모두 가자”고 제안하고 큰 무리와 함께 연못으로 향합니다. 만류하던 집단이 동행으로 바뀌며, 말로 세운 방문의 이유가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처음에는 반대하던 사람이 충분한 이유를 듣고 함께 움직이는 장면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내 생각을 바꾸게 한 말이 있었다면, 체면보다 크게 들린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선명한 것이 없으면 없다고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