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이렇게 가까이 와서 수행자 고따마를 만나지도 않고 돌아가면, 이 대중은 나를 비난할 것이다. ‘소나단다는 어리석고 미숙하며 교만하고 겁이 나서 수행자 고따마를 뵈러 가지 못한다. 이렇게 가까이 와서 어찌 만나지도 않고 돌아가겠는가!’ 대중이 비난하면 내 명성이 줄고, 명성이 줄면 재산도 줄 것이다. 우리 재산은 명성으로 얻었기 때문이다.”
Ahañceva kho pana evaṁ samīpagato samāno adisvāva samaṇaṁ gotamaṁ nivatteyyaṁ, tena maṁ ayaṁ parisā paribhaveyya: ‘bālo soṇadaṇḍo brāhmaṇo abyatto mānathaddho bhīto ca, no visahati samaṇaṁ gotamaṁ dassanāya upasaṅkamituṁ, kathañhi nāma evaṁ samīpagato samāno adisvā samaṇaṁ gotamaṁ nivattissatī’ti. Yaṁ kho panāyaṁ parisā paribhaveyya, yasopi tassa hāyetha. Yassa kho pana yaso hāyetha, bhogāpi tassa hāyeyyuṁ, yasoladdhā kho panamhākaṁ bhogā”ti.
디가 니까야 DN 4 소나단다경 (Soṇadaṇḍasutta)배경
셋째 생각은 질문하거나 답하는 위험을 피하려 돌아가는 선택을 검토합니다. 그러나 소나단다는 대중이 그를 어리석고 미숙할 뿐 아니라 교만하고 겁이 난다고 비난할 것이라 예상합니다. 가까이 왔다는 사실 때문에 돌아감도 체면을 지키는 길이 되지 못합니다. 다시 비난에서 명성 감소, 재산 감소, 명성에 의존한 재산으로 같은 사슬이 닫힙니다. 세 생각을 합치면 묻기·답하기·돌아가기 모두 위험해 보이는 막다른 상태입니다. 경은 이 불안을 곧장 비난하지 않고, 세존이 그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을 고르는 장면으로 풀어갑니다.
묵상
어느 쪽을 택해도 비난받을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나요? 당장 해결책을 고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실제 선택지와 예상된 평가를 종이에 두 칸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선명한 것이 없으면 없다고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