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앉아서도 소나단다는 같은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내가 수행자 고따마에게 질문했는데 그가 ‘그 질문은 그렇게 물을 것이 아니니라, 바라문이여. 바라문이여, 이렇게 물어야 하느니라’라고 한다면, 이 대중은 나를 비난할 것이니라. ‘소나단다는 어리석고 미숙하여 수행자 고따마에게 이치에 맞게 묻지도 못한다.’ 대중이 비난하면 내 명성이 줄고, 명성이 줄면 재산도 줄 것이니라. 우리 재산은 명성으로 얻었기 때문이니라.”
Tatrapi sudaṁ soṇadaṇḍo brāhmaṇo etadeva bahulamanuvitakkento nisinno hoti: “ahañceva kho pana samaṇaṁ gotamaṁ pañhaṁ puccheyyaṁ; tatra ce maṁ samaṇo gotamo evaṁ vadeyya: ‘na kho esa, brāhmaṇa, pañho evaṁ pucchitabbo, evaṁ nāmesa, brāhmaṇa, pañho pucchitabbo’ti, tena maṁ ayaṁ parisā paribhaveyya: ‘bālo soṇadaṇḍo brāhmaṇo abyatto, nāsakkhi samaṇaṁ gotamaṁ yoniso pañhaṁ pucchitun’ti. Yaṁ kho panāyaṁ parisā paribhaveyya, yasopi tassa hāyetha. Yassa kho pana yaso hāyetha, bhogāpi tassa hāyeyyuṁ. Yasoladdhā kho panamhākaṁ bhogā.
디가 니까야 DN 4 소나단다경 (Soṇadaṇḍasutta)배경
만남에 도착했다고 불안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소나단다는 앉은 뒤에도 숲에서 했던 첫 생각을 같은 구조로 되풀이합니다. 잘못 묻는 조건, 고따마의 질문 교정, 대중의 “어리석고 미숙하다”는 비난, 명성의 감소, 재산의 감소, 명성으로 얻은 재산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반복은 새로운 위험을 더하지 않고 생각이 계속 마음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경의 다음 전환은 세존이 이 생각을 알고 그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분야를 묻는 데서 일어납니다.
묵상
장소가 바뀌어도 같은 걱정이 계속된 적이 있나요? 생각을 멈추라고 요구하지 말고, 되풀이될 때 처음과 달라진 몸의 감각 하나가 있는지 가볍게 살펴볼까요? 답이 떠오르지 않으면 잠시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