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물 때
욕망에서 물러나는 생각이 일어났느니라.
나는 이렇게 알았느니라.
‘내게 이 물러남의 생각이 일어났다.
이는 나를 해치지도 남을 해치지도 우리 모두를 해치지도 않으며,
지혜를 키우고 괴로움 없음의 편에 서서 열반으로 이끈다.’
Tassa mayhaṁ, bhikkhave,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uppajjati nekkhammavitakko. So evaṁ pajānāmi: ‘uppanno kho me ayaṁ nekkhammavitakko. So ca kho nevattabyābādhāya saṁvattati, na parabyābādhāya saṁvattati, na ubhayabyābādhāya saṁvattati, paññāvuddhiko avighātapakkhiko nibbānasaṁvattaniko’.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이제 두 번째 갈래가 시작됩니다. 욕망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생각은 자신과 남을 해치지 않고 지혜를 키우며 괴로움이 없는 쪽과 열반으로 향합니다. 해로운 생각을 판별할 때 사용한 기준이 정확히 반대로 적용됩니다. 이로운 생각은 단지 기분이 좋아지는 생각이 아니라 실제로 해를 줄이고 지혜와 자유를 키우는 생각입니다. 무엇을 피할지 안 뒤에 마음이 머물 새로운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묵상
무언가를 더 얻는 생각이 아니라 잠시 물러나 충분함을 보는 생각은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나와 남을 해치지 않으며 지혜를 키우는 작은 선택을 오늘 한 가지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 생각을 밤새 계속 생각하고 헤아려도
나는 거기서 생길 위험을 보지 못했느니라.
낮 동안에도, 밤낮으로도 그러하였느니라.
다만 너무 오래 생각하고 헤아리면 몸이 지칠 것이며,
몸이 지치면 마음도 긴장될 것이니라.
Rattiñcepi naṁ, bhikkhave, anuvitakkeyyaṁ anuvicāreyyaṁ, neva tatonidānaṁ bhayaṁ samanupassāmi. Divasañcepi naṁ, bhikkhave, anuvitakkeyyaṁ anuvicāreyyaṁ, neva tatonidānaṁ bhayaṁ samanupassāmi. Rattindivañcepi naṁ, bhikkhave, anuvitakkeyyaṁ anuvicāreyyaṁ, neva tatonidānaṁ bhayaṁ samanupassāmi. Api ca kho me aticiraṁ anuvitakkayato anuvicārayato kāyo kilameyya. Kāye kilante cittaṁ ūhaññeyya.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물러남의 생각은 오래 품어도 해로운 결과가 없지만, 부처님은 여기서도 균형을 놓치지 않습니다. 이로운 생각이라 해도 계속 언어로 굴리면 몸이 지치고 마음이 긴장할 수 있습니다. 내용이 좋다는 이유로 끝없이 사유하는 것과 고요한 집중은 다릅니다. 생각의 윤리적 방향을 바로잡은 뒤에는 생각 자체를 쉬게 해야 합니다. 몸의 피로를 무시하지 않고 마음 수행의 조건으로 살핀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묵상
좋은 해결책이나 수행에 관한 생각조차 너무 오래 굴려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 적이 있나요? 이로운 방향은 그대로 유지하되 생각의 말을 잠시 쉬게 하는 고요한 순간을 허락할 수 있을까요?
마음이 긴장되면 집중에서 멀어지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마음을 안으로 세우고 가라앉히며,
하나로 모아 집중시켰느니라.
무엇 때문인가?
내 마음이 긴장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느니라.
Ūhate citte ārā cittaṁ samādhimhāti. So kho ahaṁ, bhikkhave, ajjhattameva cittaṁ saṇṭhapemi sannisādemi ekodiṁ karomi samādahāmi. Taṁ kissa hetu? ‘Mā me cittaṁ ūhaññī’ti.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몸이 지치고 마음이 긴장하면 고요한 집중에서 멀어집니다. 부처님은 이때 더 많은 생각으로 자신을 밀어붙이지 않고 마음을 안으로 모아 가라앉힙니다. 세우고, 가라앉히고, 하나로 만들고, 집중시킨다는 네 동사가 안정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해로운 생각을 버리는 단계와 이로운 생각을 기르는 단계를 지나, 생각의 움직임 자체가 쉬는 단계로 옮겨 갑니다. 긴장을 알아차리는 것이 후퇴가 아니라 집중을 지키는 지혜입니다.
묵상
마음이 긴장했을 때 더 세게 밀어붙이는 것이 늘 도움이 되었나요? 지금은 문제를 더 생각하기보다 안으로 가라앉히고 한곳에 모으는 시간이 정말 필요한지 몸의 작은 신호에 물어볼 수 있을까요?
내가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물 때
선의의 생각이 일어났고 …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이 일어났느니라.
나는 이렇게 알았느니라.
‘내게 이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이 일어났다.
이는 나를 해치지도 남을 해치지도 우리 모두를 해치지도 않으며,
지혜를 키우고 괴로움 없음의 편에 서서 열반으로 이끈다.’
Tassa mayhaṁ, bhikkhave,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uppajjati abyāpādavitakko …pe… uppajjati avihiṁsāvitakko. So evaṁ pajānāmi: ‘uppanno kho me ayaṁ avihiṁsāvitakko. So ca kho nevattabyābādhāya saṁvattati, na parabyābādhāya saṁvattati, na ubhayabyābādhāya saṁvattati, paññāvuddhiko avighātapakkhiko nibbānasaṁvattaniko’.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선의에도 앞에서 물러남의 생각을 살핀 것과 같은 성찰이 적용되고, 이어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이 자세히 드러납니다. 이 생각은 자신과 남과 모두를 해치지 않고 지혜를 키우며 열반으로 이끕니다. 밤과 낮 동안 품어도 해로운 위험은 없지만, 오래 헤아리면 몸이 지치고 마음이 긴장되므로 마침내 안으로 가라앉혀 집중합니다. 해치지 않음은 단지 행동을 참는 데 그치지 않고, 생각에서부터 모두에게 해가 없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기르는 마음입니다.
묵상
상대에게 해를 주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나요? 말과 행동이 나오기 이전의 생각에서부터 선의와 해치지 않음을 의식적으로 기른다면, 지금의 갈등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수행자가 무엇이든 자주 생각하고 헤아리면
그쪽으로 마음이 기우느니라.
욕망에서 물러남을 자주 생각하면 욕망의 생각을 버리고
마음이 물러남으로 기울며,
선의를 자주 생각하면 마음이 선의로 기울고,
해치지 않음을 자주 생각하면 해침의 생각을 버려
마음이 해치지 않음으로 기우느니라.
Yaññadeva,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tathā tathā nati hoti cetaso. Nekkhammavitakkañce,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pahāsi kāmavitakkaṁ, nekkhammavitakkaṁ bahulamakāsi, tassaṁ taṁ nekkhammavitakkāya cittaṁ namati. Abyāpādavitakkañce, bhikkhave …pe… avihiṁsāvitakkañce,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pahāsi vihiṁsāvitakkaṁ, avihiṁsāvitakkaṁ bahulamakāsi, tassa taṁ avihiṁsāvitakkāya cittaṁ namati.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앞서 해로운 생각에 적용된 마음의 경향 원리가 이번에는 이로운 방향으로 되풀이됩니다. 물러남과 선의와 해치지 않음을 자주 생각하면 마음은 실제로 그쪽으로 기웁니다. 이는 마음의 습관이 운명처럼 고정되지 않았다는 선언입니다. 반복은 욕망과 미움을 강화할 수도 있지만 같은 원리로 충분함과 친절과 비폭력을 강화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 자신의 수행이 그 가능성을 보여 주는 증거로 제시됩니다.
묵상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저절로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나요? 물러남과 선의와 해치지 않음을 날마다 꾸준히 떠올리는 작은 반복이 차곡차곡 쌓이면, 몇 달 뒤 마음의 기울기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마치 여름 마지막 달,
모든 곡식을 마을 안으로 거둔 뒤 소를 지키는 목동은
나무 밑이나 빈 들에 있으면서
‘소들이 저기 있다’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나도
‘이러한 마음들이 있다’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었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gimhānaṁ pacchime māse sabbasassesu gāmantasambhatesu gopālako gāvo rakkheyya, tassa rukkhamūlagatassa vā abbhokāsagatassa vā satikaraṇīyameva hoti: ‘etā gāvo’ti. Evamevaṁ kho, bhikkhave, satikaraṇīyameva ahosi: ‘ete dhammā’ti.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수확이 끝난 뒤에는 소가 밭을 망칠 위험이 줄어듭니다. 목동은 더 이상 막대기로 이리저리 몰지 않고 소들이 있는지만 알아차립니다. 해로운 생각이 강할 때의 적극적인 제지와 이로운 방향이 자리 잡은 뒤의 부드러운 알아차림이 대조됩니다. 마음을 언제나 억세게 통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훈련이 무르익으면 생각이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해지고, 그 알아차림 안에서 마음은 자연스럽게 안정됩니다.
묵상
이미 안전해진 마음까지 옛 습관대로 거칠게 통제하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은 막대기로 몰아야 할 때인지, 그저 생각이 있음을 가만히 알아차리면 되는 때인지 부드럽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