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 드웨다위딱까경

맛지마 니까야 MN 19

깨달음 전 생각을 두 갈래로 나누어 살피고 마음을 길들인 과정을 들려준다.

인용된 가르침 26구절

이 경을 4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해로운 생각을 알아보다 8구절

욕망과 악의와 해침이 어디로 이끄는지 보고 마음에서 놓는 과정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동산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수행자들을 부르셨다. “수행자들이여.” “세존이시여.” 수행자들이 대답하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Bhagavā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맛지마 니까야 열아홉 번째 경의 서두입니다. 장소와 청중, 부름과 응답이 차례로 제시됩니다. 이어지는 긴 이야기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기 전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관찰했는지 직접 회고하는 설법입니다. 완성된 성자의 추상적인 조언만이 아니라,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시행착오 속에서 살핀 경험을 들려준다는 점이 이 경의 특별한 힘입니다. 지금 이 장면은 그 자전적 가르침의 문을 엽니다.

묵상

이미 완성된 결과보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살핀 과정을 들을 준비가 되었나요? 내 생각도 고정된 성격이 아니라 관찰하고 길들일 수 있는 흐름이라고 본다면 어떤 가능성이 열릴까요?

수행자들이여, 깨닫기 전 아직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느니라. ‘생각을 계속 두 갈래로 나누어 머물면 어떨까?’ 감각적 욕망과 악의와 해치려는 생각을 한 갈래에 두고, 욕망에서 물러남과 선의와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을 다른 갈래에 두었느니라.

“Pubbeva me, bhikkhave, sambodhā anabhisambuddhassa bodhisattasseva sato etadahosi: ‘yannūnāhaṁ dvidhā katvā dvidhā katvā vitakke vihareyyan’ti. So kho ahaṁ, bhikkhave, yo cāyaṁ kāmavitakko yo ca byāpādavitakko yo ca vihiṁsāvitakko—imaṁ ekaṁ bhāgamakāsiṁ; yo cāyaṁ nekkhammavitakko yo ca abyāpādavitakko yo ca avihiṁsāvitakko—imaṁ dutiyaṁ bhāgamakā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부처님은 생각을 복잡한 이론으로 분석하기보다 결과가 다른 두 갈래로 나눕니다. 한쪽에는 감각적 욕망과 악의와 해침이 있고, 다른 쪽에는 욕망에서 물러남과 선의와 해치지 않음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 안에서 번갈아 일어나는 방향을 구별한 것입니다. 생각이 떠오른 사실을 탓하기 전에 어느 갈래에 속하며 어디로 이끄는지 알아보는 실험이 시작됩니다.

묵상

오늘 마음을 스친 생각들을 두 갈래로 나눈다면 어느 쪽에 더 오래 머물렀나요? 떠오른 생각을 곧바로 나라고 부르지 않고, 그 생각이 향하는 실제 방향만 차분히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내가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물 때 감각적 욕망의 생각이 일어났느니라. 나는 이렇게 알았느니라. ‘내게 이 감각적 욕망의 생각이 일어났다. 이는 나를 해치고 남을 해치며 우리 모두를 해치는 데 이르고, 지혜를 막고 괴로움의 편에 서서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다.’

Tassa mayhaṁ, bhikkhave,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uppajjati kāmavitakko. So evaṁ pajānāmi: ‘uppanno kho me ayaṁ kāmavitakko. So ca kho attabyābādhāyapi saṁvattati, parabyābādhāyapi saṁvattati, ubhayabyābādhāyapi saṁvattati, paññānirodhiko vighātapakkhiko anibbānasaṁvattaniko’.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부지런히 수행하는 중에도 욕망의 생각은 일어났습니다. 부처님은 그 사실을 실패로 숨기지 않고 먼저 정확히 알아차립니다. 이어 그 생각이 자신과 남과 양쪽 모두에게 미치는 결과를 살피고, 지혜를 막으며 괴로움을 키우고 열반으로 향하지 않는다고 판단합니다. 생각의 매력이나 강도보다 결과를 기준으로 보는 방식입니다. 떠오름과 따름 사이에 이해가 들어갈 때 마음에는 다른 선택이 생깁니다.

묵상

강하게 끌리는 생각이 생길 때 그것이 약속하는 즐거움만 보고 있지는 않나요? 그 생각을 오래 따랐을 때 나와 남과 우리의 소중한 관계에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도 함께 바라볼 수 있을까요?

‘이는 나를 해친다’고 살피자 그 생각은 가라앉았느니라. ‘남을 해친다’고 살피자 가라앉았고, ‘우리 모두를 해친다’고 살피자 가라앉았느니라. ‘지혜를 막고 괴로움의 편에 서서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살피자 또한 가라앉았느니라. 그리하여 일어나는 감각적 욕망의 생각을 나는 버리고 몰아내고 끝내었느니라.

‘Attabyābādhāya saṁvattatī’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parabyābādhāya saṁvattatī’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ubhayabyābādhāya saṁvattatī’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paññānirodhiko vighātapakkhiko anibbānasaṁvattaniko’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So kho ahaṁ, bhikkhave, uppannuppannaṁ kāmavitakkaṁ pajahameva vinodameva byantameva naṁ akā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욕망의 생각을 약하게 만든 것은 자신을 꾸짖는 말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반복된 성찰입니다. 자신에게 해롭고 남에게 해롭고 모두에게 해롭다는 점을 차례로 보며, 지혜와 자유의 방향에도 맞지 않음을 확인합니다. 그러자 생각이 가라앉습니다. 부처님은 일어날 때마다 버리고 몰아내고 끝냈다고 회고합니다. 억압보다는 환상을 걷어 내는 분명한 이해가 생각의 힘을 줄인다는 실제 과정입니다.

묵상

놓고 싶은 생각과 힘으로 싸우기보다 그 생각이 가져온 실제 결과를 정직하게 돌아본 적이 있나요? 해로움을 분명히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끌림이 조금 약해지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내가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물 때 악의의 생각이 일어났고 … 해치려는 생각이 일어났느니라. 나는 이렇게 알았느니라. ‘내게 이 해치려는 생각이 일어났다. 이는 나를 해치고 남을 해치며 우리 모두를 해치는 데 이르고, 지혜를 막고 괴로움의 편에 서서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다.’

Tassa mayhaṁ, bhikkhave,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uppajjati byāpādavitakko …pe… uppajjati vihiṁsāvitakko. So evaṁ pajānāmi: ‘uppanno kho me ayaṁ vihiṁsāvitakko. So ca kho attabyābādhāyapi saṁvattati, parabyābādhāyapi saṁvattati, ubhayabyābādhāyapi saṁvattati, paññānirodhiko vighātapakkhiko anibbānasaṁvattaniko’.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악의에도 앞에서 욕망을 살핀 것과 같은 성찰이 적용되고, 이어 해치려는 생각이 자세히 드러납니다. 욕망뿐 아니라 미움과 잔인함도 자신과 남과 모두에게 해로운지, 지혜를 막고 괴로움을 키우며 열반에서 멀어지게 하는지를 기준으로 봅니다. 그 생각이 당장 정당해 보이는 이유나 감정의 세기보다, 실제로 자신과 타인에게 남길 상처와 지혜와 자유를 가리는 결과를 먼저 확인하는 태도입니다.

묵상

화가 날 때 상대를 벌주고 싶은 생각이 정당함처럼 느껴지나요? 그 생각을 실제로 끝까지 따랐을 때 나와 상대와 관계에 남을 상처를 함께 본다면 마음의 방향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요?

‘이는 나를 해친다’고 살피자 그 생각은 가라앉았느니라. ‘남을 해친다’고 살피자 가라앉았고, ‘우리 모두를 해친다’고 살피자 가라앉았느니라. ‘지혜를 막고 괴로움의 편에 서서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살피자 또한 가라앉았느니라. 그리하여 일어나는 해치려는 생각을 나는 버리고 몰아내고 끝내었느니라.

‘Attabyābādhāya saṁvattatī’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parabyābādhāya saṁvattatī’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ubhayabyābādhāya saṁvattatī’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paññānirodhiko vighātapakkhiko anibbānasaṁvattaniko’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So kho ahaṁ, bhikkhave, uppannuppannaṁ vihiṁsāvitakkaṁ pajahameva vinodameva byantameva naṁ akā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해치려는 생각도 욕망의 생각과 똑같은 네 성찰을 거쳐 약해집니다. 나와 남과 모두에게 주는 해로움, 지혜를 막고 괴로움을 키우며 열반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같은 기준을 실제 순간마다 거듭 적용하는 까닭은 그 원리를 아는 것과 마음에서 놓는 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해로운 생각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실패로 여기기보다, 일어날 때마다 결과를 알아보고 놓는 꾸준함이 강조됩니다.

묵상

이미 놓았다고 여긴 미움이 다시 올라오면 실패했다고 느끼나요? 다시 일어난 바로 그 순간이 같은 기준으로 차분히 살피고 놓는 새로운 기회라면, 자신을 덜 탓하며 대응할 수 있을까요?

수행자가 무엇이든 자주 생각하고 헤아리면 그쪽으로 마음이 기우느니라. 감각적 욕망을 자주 생각하면 물러남의 생각을 버리고 욕망을 많이 길러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며, 악의를 자주 생각하면 마음이 악의로 기울고, 해치려는 생각을 자주 생각하면 해치지 않음의 생각을 버려 마음이 해침으로 기우느니라.

Yaññadeva,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tathā tathā nati hoti cetaso. Kāmavitakkañce,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pahāsi nekkhammavitakkaṁ, kāmavitakkaṁ bahulamakāsi, tassa taṁ kāmavitakkāya cittaṁ namati. Byāpādavitakkañce, bhikkhave …pe… vihiṁsāvitakkañce,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pahāsi avihiṁsāvitakkaṁ, vihiṁsāvitakkaṁ bahulamakāsi, tassa taṁ vihiṁsāvitakkāya cittaṁ namati.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이 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원리가 나옵니다. 마음은 한 번 떠오른 생각으로 결정되지 않지만, 자주 생각하고 헤아리는 방향으로 점차 기웁니다. 욕망을 반복하면 물러남의 가능성이 약해지고, 악의와 해침을 반복하면 선의와 비폭력의 길이 좁아집니다. 마음의 성향을 타고난 고정 성격으로 보지 않고 반복해서 주의를 준 결과로 봅니다. 그러므로 작은 생각의 습관도 시간이 지나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묵상

최근 자주 되풀이한 생각은 마음을 어느 방향으로 기울이고 있나요? 한 번의 생각을 두려워하기보다 반복해서 먹이고 있는 흐름을 알아차린다면, 오늘 무엇에 주의를 덜 줄 수 있을까요?

마치 우기 마지막 달 가을철, 곡식이 빽빽하게 자랐을 때 소를 지키는 목동이 막대기로 이리저리 소를 밀어내며 제지하는 것과 같으니라. 소가 곡식에 들어가면 목동이 죽임이나 감금이나 벌금이나 꾸지람을 당할 수 있음을 보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나는 해로운 것의 비참함과 더러움을 보았고, 욕망에서 물러나는 이로운 것의 깨끗한 힘을 보았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vassānaṁ pacchime māse saradasamaye kiṭṭhasambādhe gopālako gāvo rakkheyya. So tā gāvo tato tato daṇḍena ākoṭeyya paṭikoṭeyya sannirundheyya sannivāreyya. Taṁ kissa hetu? Passati hi so, bhikkhave, gopālako tatonidānaṁ vadhaṁ vā bandhanaṁ vā jāniṁ vā garahaṁ vā. Evameva kho ahaṁ, bhikkhave, addas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ādīnavaṁ okāraṁ saṅkilesaṁ, kusalānaṁ dhammānaṁ nekkhamme ānisaṁsaṁ vodānapakkha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수확 전 밭에서는 소가 곡식을 해칠 위험이 크므로 목동이 적극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생각을 버리고 몰아내는 앞 과정이 이 장면에 비유됩니다. 막대기를 드는 까닭은 소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방치했을 때 생길 피해를 분명히 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도 해로운 생각의 더러움과 손실을 보고, 욕망에서 물러나는 생각의 이로움과 맑게 하는 힘을 보았습니다. 분별이 억제의 바탕이 된다는 뜻입니다.

묵상

마음의 소가 들어가면 삶의 소중한 밭을 해칠 생각은 무엇인가요? 그 생각을 억지로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결과를 분명히 알고 제때 방향을 돌리는 지혜롭고 부드러운 단호함을 가질 수 있을까요?

2 이로운 생각을 기르다 6구절

물러남과 선의와 해치지 않음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고요히 쉬게 하는 과정

내가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물 때 욕망에서 물러나는 생각이 일어났느니라. 나는 이렇게 알았느니라. ‘내게 이 물러남의 생각이 일어났다. 이는 나를 해치지도 남을 해치지도 우리 모두를 해치지도 않으며, 지혜를 키우고 괴로움 없음의 편에 서서 열반으로 이끈다.’

Tassa mayhaṁ, bhikkhave,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uppajjati nekkhammavitakko. So evaṁ pajānāmi: ‘uppanno kho me ayaṁ nekkhammavitakko. So ca kho nevattabyābādhāya saṁvattati, na parabyābādhāya saṁvattati, na ubhayabyābādhāya saṁvattati, paññāvuddhiko avighātapakkhiko nibbānasaṁvattaniko’.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이제 두 번째 갈래가 시작됩니다. 욕망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생각은 자신과 남을 해치지 않고 지혜를 키우며 괴로움이 없는 쪽과 열반으로 향합니다. 해로운 생각을 판별할 때 사용한 기준이 정확히 반대로 적용됩니다. 이로운 생각은 단지 기분이 좋아지는 생각이 아니라 실제로 해를 줄이고 지혜와 자유를 키우는 생각입니다. 무엇을 피할지 안 뒤에 마음이 머물 새로운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묵상

무언가를 더 얻는 생각이 아니라 잠시 물러나 충분함을 보는 생각은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나와 남을 해치지 않으며 지혜를 키우는 작은 선택을 오늘 한 가지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 생각을 밤새 계속 생각하고 헤아려도 나는 거기서 생길 위험을 보지 못했느니라. 낮 동안에도, 밤낮으로도 그러하였느니라. 다만 너무 오래 생각하고 헤아리면 몸이 지칠 것이며, 몸이 지치면 마음도 긴장될 것이니라.

Rattiñcepi naṁ, bhikkhave, anuvitakkeyyaṁ anuvicāreyyaṁ, neva tatonidānaṁ bhayaṁ samanupassāmi. Divasañcepi naṁ, bhikkhave, anuvitakkeyyaṁ anuvicāreyyaṁ, neva tatonidānaṁ bhayaṁ samanupassāmi. Rattindivañcepi naṁ, bhikkhave, anuvitakkeyyaṁ anuvicāreyyaṁ, neva tatonidānaṁ bhayaṁ samanupassāmi. Api ca kho me aticiraṁ anuvitakkayato anuvicārayato kāyo kilameyya. Kāye kilante cittaṁ ūhaññeyya.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물러남의 생각은 오래 품어도 해로운 결과가 없지만, 부처님은 여기서도 균형을 놓치지 않습니다. 이로운 생각이라 해도 계속 언어로 굴리면 몸이 지치고 마음이 긴장할 수 있습니다. 내용이 좋다는 이유로 끝없이 사유하는 것과 고요한 집중은 다릅니다. 생각의 윤리적 방향을 바로잡은 뒤에는 생각 자체를 쉬게 해야 합니다. 몸의 피로를 무시하지 않고 마음 수행의 조건으로 살핀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묵상

좋은 해결책이나 수행에 관한 생각조차 너무 오래 굴려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 적이 있나요? 이로운 방향은 그대로 유지하되 생각의 말을 잠시 쉬게 하는 고요한 순간을 허락할 수 있을까요?

마음이 긴장되면 집중에서 멀어지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마음을 안으로 세우고 가라앉히며, 하나로 모아 집중시켰느니라. 무엇 때문인가? 내 마음이 긴장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느니라.

Ūhate citte ārā cittaṁ samādhimhāti. So kho ahaṁ, bhikkhave, ajjhattameva cittaṁ saṇṭhapemi sannisādemi ekodiṁ karomi samādahāmi. Taṁ kissa hetu? ‘Mā me cittaṁ ūhaññī’ti.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몸이 지치고 마음이 긴장하면 고요한 집중에서 멀어집니다. 부처님은 이때 더 많은 생각으로 자신을 밀어붙이지 않고 마음을 안으로 모아 가라앉힙니다. 세우고, 가라앉히고, 하나로 만들고, 집중시킨다는 네 동사가 안정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해로운 생각을 버리는 단계와 이로운 생각을 기르는 단계를 지나, 생각의 움직임 자체가 쉬는 단계로 옮겨 갑니다. 긴장을 알아차리는 것이 후퇴가 아니라 집중을 지키는 지혜입니다.

묵상

마음이 긴장했을 때 더 세게 밀어붙이는 것이 늘 도움이 되었나요? 지금은 문제를 더 생각하기보다 안으로 가라앉히고 한곳에 모으는 시간이 정말 필요한지 몸의 작은 신호에 물어볼 수 있을까요?

내가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물 때 선의의 생각이 일어났고 …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이 일어났느니라. 나는 이렇게 알았느니라. ‘내게 이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이 일어났다. 이는 나를 해치지도 남을 해치지도 우리 모두를 해치지도 않으며, 지혜를 키우고 괴로움 없음의 편에 서서 열반으로 이끈다.’

Tassa mayhaṁ, bhikkhave,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uppajjati abyāpādavitakko …pe… uppajjati avihiṁsāvitakko. So evaṁ pajānāmi: ‘uppanno kho me ayaṁ avihiṁsāvitakko. So ca kho nevattabyābādhāya saṁvattati, na parabyābādhāya saṁvattati, na ubhayabyābādhāya saṁvattati, paññāvuddhiko avighātapakkhiko nibbānasaṁvattaniko’.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선의에도 앞에서 물러남의 생각을 살핀 것과 같은 성찰이 적용되고, 이어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이 자세히 드러납니다. 이 생각은 자신과 남과 모두를 해치지 않고 지혜를 키우며 열반으로 이끕니다. 밤과 낮 동안 품어도 해로운 위험은 없지만, 오래 헤아리면 몸이 지치고 마음이 긴장되므로 마침내 안으로 가라앉혀 집중합니다. 해치지 않음은 단지 행동을 참는 데 그치지 않고, 생각에서부터 모두에게 해가 없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기르는 마음입니다.

묵상

상대에게 해를 주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나요? 말과 행동이 나오기 이전의 생각에서부터 선의와 해치지 않음을 의식적으로 기른다면, 지금의 갈등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수행자가 무엇이든 자주 생각하고 헤아리면 그쪽으로 마음이 기우느니라. 욕망에서 물러남을 자주 생각하면 욕망의 생각을 버리고 마음이 물러남으로 기울며, 선의를 자주 생각하면 마음이 선의로 기울고, 해치지 않음을 자주 생각하면 해침의 생각을 버려 마음이 해치지 않음으로 기우느니라.

Yaññadeva,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tathā tathā nati hoti cetaso. Nekkhammavitakkañce,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pahāsi kāmavitakkaṁ, nekkhammavitakkaṁ bahulamakāsi, tassaṁ taṁ nekkhammavitakkāya cittaṁ namati. Abyāpādavitakkañce, bhikkhave …pe… avihiṁsāvitakkañce,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pahāsi vihiṁsāvitakkaṁ, avihiṁsāvitakkaṁ bahulamakāsi, tassa taṁ avihiṁsāvitakkāya cittaṁ namati.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앞서 해로운 생각에 적용된 마음의 경향 원리가 이번에는 이로운 방향으로 되풀이됩니다. 물러남과 선의와 해치지 않음을 자주 생각하면 마음은 실제로 그쪽으로 기웁니다. 이는 마음의 습관이 운명처럼 고정되지 않았다는 선언입니다. 반복은 욕망과 미움을 강화할 수도 있지만 같은 원리로 충분함과 친절과 비폭력을 강화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 자신의 수행이 그 가능성을 보여 주는 증거로 제시됩니다.

묵상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저절로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나요? 물러남과 선의와 해치지 않음을 날마다 꾸준히 떠올리는 작은 반복이 차곡차곡 쌓이면, 몇 달 뒤 마음의 기울기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마치 여름 마지막 달, 모든 곡식을 마을 안으로 거둔 뒤 소를 지키는 목동은 나무 밑이나 빈 들에 있으면서 ‘소들이 저기 있다’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나도 ‘이러한 마음들이 있다’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었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gimhānaṁ pacchime māse sabbasassesu gāmantasambhatesu gopālako gāvo rakkheyya, tassa rukkhamūlagatassa vā abbhokāsagatassa vā satikaraṇīyameva hoti: ‘etā gāvo’ti. Evamevaṁ kho, bhikkhave, satikaraṇīyameva ahosi: ‘ete dhammā’ti.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수확이 끝난 뒤에는 소가 밭을 망칠 위험이 줄어듭니다. 목동은 더 이상 막대기로 이리저리 몰지 않고 소들이 있는지만 알아차립니다. 해로운 생각이 강할 때의 적극적인 제지와 이로운 방향이 자리 잡은 뒤의 부드러운 알아차림이 대조됩니다. 마음을 언제나 억세게 통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훈련이 무르익으면 생각이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해지고, 그 알아차림 안에서 마음은 자연스럽게 안정됩니다.

묵상

이미 안전해진 마음까지 옛 습관대로 거칠게 통제하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은 막대기로 몰아야 할 때인지, 그저 생각이 있음을 가만히 알아차리면 되는 때인지 부드럽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3 고요에서 깨달음까지 6구절

준비된 마음이 네 단계의 깊은 집중과 세 가지 앎을 거쳐 해탈에 이르는 과정

나의 노력은 힘차고 느슨하지 않았으며, 알아차림은 굳게 서서 흐려지지 않았느니라. 몸은 고요하고 긴장하지 않았으며 마음은 하나로 집중되었느니라.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것에서 멀어져,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며 멀어짐에서 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물렀느니라.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것이 고요해지자, 내면의 맑음과 하나 된 마음, 집중에서 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두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물렀느니라.

Āraddhaṁ kho pana me, bhikkhave, vīriyaṁ ahosi asallīnaṁ,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passaddho kāyo asāraddho, samāhitaṁ cittaṁ ekaggaṁ. So kho ahaṁ, bhikkhave,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āsiṁ.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cetaso ekodibhāvaṁ avitakkaṁ avicāraṁ samādhijaṁ pītisukhaṁ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ā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마음의 두 갈래를 오래 훈련한 결과 노력과 알아차림과 몸과 집중이 모두 준비됩니다. 그 바탕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깊은 집중으로 들어갑니다. 첫 단계에는 대상을 향한 생각의 움직임과 멀어짐에서 난 기쁨이 남아 있고, 둘째 단계에서는 그 생각마저 잦아들어 집중에서 난 기쁨과 행복과 내면의 맑음이 자리합니다. 생각을 분별하는 수행이 생각 없는 고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묵상

집중을 억지로 만들어 내려 하기 전에 노력과 알아차림과 몸의 고요가 함께 준비되어 있는지 살펴보았나요? 지금 이 순간에는 어느 조건을 가장 먼저 정성껏 돌봐야 한다고 느끼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쁨이 빛바래자 평정하고 알아차리며 분명히 알아, 몸으로 행복을 느끼는 셋째 깊은 집중에 머물렀느니라. “평정하고 알아차리며 행복히 머문다”고 성스러운 이들이 말하는 경지였느니라. 즐거움과 괴로움, 기쁨과 슬픔이 사라져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고 평정과 알아차림이 맑은 넷째 깊은 집중에 머물렀느니라. 집중된 마음이 맑고 밝고 흠과 더러움이 없으며 유연하고 쓸모 있고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게 되자, 과거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느니라.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āsiṁ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ṁvedesiṁ, yaṁ taṁ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āsiṁ.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ṁ upekkhāsatipārisuddhiṁ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āsiṁ.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셋째 단계에서는 강한 기쁨이 잦아들고 평온과 알아차림 속의 행복이 남습니다. 넷째 단계에서는 즐거움과 괴로움, 기쁨과 슬픔을 넘어 평온과 알아차림이 완전히 맑아집니다. 부처님은 이 고요를 그 자체로 종착점이라 하지 않고 앎을 위한 유연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사용합니다. 첫 번째로 과거의 삶을 기억하는 방향에 마음을 기울이며 깨달음의 밤 세 가지 앎이 시작됩니다.

묵상

강렬한 기쁨이 줄어들면 좋은 상태를 잃었다고 느끼나요? 더 조용하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평온이 오히려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성숙한 마음일 수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나는 여러 과거의 삶을 그 모습과 세부까지 기억했느니라. 이는 밤의 첫 번째 시각에 얻은 첫 번째 앎이었느니라.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문 이에게 그러하듯, 무명은 무너지고 앎이 일어났으며 어둠은 무너지고 빛이 일어났느니라.

So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āmi.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pe…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āmi. Ayaṁ kho me, bhikkhave, rattiyā paṭhame yāme paṭham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첫 번째 앎은 여러 과거의 삶을 그 모습과 세부까지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를 밤의 첫 시각에 얻은 앎이라 말합니다. 이 경험의 핵심은 신기한 기억을 소유하거나 과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무명이 무너지고 앎이 일어나며 어둠이 무너지고 빛이 일어났다는 변화에 있습니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물며 닦은 고요가 마음을 밝히고, 자신의 긴 삶의 흐름을 분명히 보는 통찰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묵상

특별한 경험 자체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그것이 무명을 줄이고 삶을 더 분명히 보게 하는지 살피고 있나요? 내게 필요한 앎은 무엇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어둠을 밝히기 위한 것일까요?

마음이 다시 맑아지자, 존재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느니라. 맑고 인간을 뛰어넘는 눈으로 존재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았으며, 낮고 높고 아름답고 추하며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 가는 존재들이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이어지는 것을 알았느니라. 이는 밤의 가운데 시각에 얻은 두 번째 앎이었느니라. 무명은 무너지고 앎이, 어둠은 무너지고 빛이 일어났느니라.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문 이에게 그러하듯이.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ṁ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siṁ.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pe…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pe…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mi. Ayaṁ kho me, bhikkhave, rattiyā majjhime yāme du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두 번째 앎도 앞에서 말한 맑고 밝고 흠과 더러움이 없으며 유연하고 쓸모 있고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는 집중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 마음을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데 기울여, 존재들이 자신의 행위에 따라 서로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것을 봅니다. 첫 앎이 자신의 긴 삶의 흐름을 비추었다면 둘째 앎은 모든 존재가 행위와 결과의 질서 안에 있음을 보는 것으로 시야가 넓어집니다.

묵상

내 선택이 흔적 없이 사라진다고 여기나요, 아니면 마음과 관계에 방향을 남긴다고 느끼나요? 오늘의 작은 행위가 앞으로 어떤 성향과 결과를 키울지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까요?

맑고 밝고 흠과 더러움이 없으며, 유연하고 쓸모 있고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는 집중된 마음을 번뇌가 다하는 앎으로 기울였느니라.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느니라. ‘이것이 괴로움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 또한 번뇌와 그 일어남과 소멸과 그 소멸로 이끄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았느니라.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ṁ khay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siṁ.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Ime āsavā’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세 번째 앎은 번뇌를 끝내는 직접적인 지혜입니다. 부처님은 먼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같은 네 갈래로 번뇌와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과 길을 압니다. 특별한 능력의 열거가 괴로움의 원인과 소멸에 대한 통찰로 귀결됩니다. 이 경이 생각의 두 갈래에서 시작한 이유도 분명해집니다. 생각을 다스리는 목적은 더 나은 자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의 구조를 꿰뚫어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묵상

지금 겪는 괴로움을 빨리 없애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 원인과 소멸의 과정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괴로움과 번뇌를 네 갈래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차분히 살핀다면 무엇이 먼저 분명해질까요?

이렇게 알고 보자 나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와 존재를 향한 번뇌와 무명의 번뇌에서 풀려났느니라.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있었느니라.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알았느니라. 이는 밤의 마지막 시각에 얻은 세 번째 앎이었느니라. 무명은 무너지고 앎이, 어둠은 무너지고 빛이 일어났느니라.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문 이에게 그러하듯이.

Tassa me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ittha,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ittha,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ittha,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ahos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abbhaññāsiṁ. Ayaṁ kho me, bhikkhave, rattiyā pacchime yāme ta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네 가지 진리와 번뇌의 구조를 있는 그대로 알자 마음이 세 번뇌에서 풀려납니다. 감각적 욕망, 계속 존재하려는 갈망, 무명입니다. 해탈 뒤에는 해탈했다는 분명한 앎과 더 할 일이 없다는 확인이 따릅니다. 부처님은 이를 밤의 마지막 시각에 얻은 세 번째 앎이라 말합니다. 처음 생각 하나의 결과를 살피던 훈련이 깊은 집중과 통찰을 거쳐 태어남과 괴로움의 완전한 끝으로 이어졌습니다.

묵상

작은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너무 사소해 보이나요? 한 번의 분별과 오랫동안 반복된 마음 훈련이 차곡차곡 쌓여 깊은 자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 여정에서 지금 나의 출발점은 어디일까요?

4 안전한 길을 열다 6구절

사슴 무리의 비유로 잘못된 길과 안전한 여덟 가지 길을 밝히는 마지막 가르침

수행자들이여, 숲속 황야에 넓고 낮은 늪이 있고 큰 사슴 무리가 그곳에 기대어 산다고 하자. 그들을 해치고 불행과 위험에 빠뜨리려는 사람이 와서, 행복으로 이끄는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막고 그릇된 길을 연 뒤 미끼가 될 숫사슴과 암사슴을 놓아두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araññe pavane mahantaṁ ninnaṁ pallalaṁ. Tamenaṁ mahāmigasaṅgho upanissāya vihareyya. Tassa kocideva puriso uppajjeyya anatthakāmo ahitakāmo ayogakkhemakāmo. So yvāssa maggo khemo sovatthiko pītigamanīyo taṁ maggaṁ pidaheyya, vivareyya kummaggaṁ, odaheyya okacaraṁ, ṭhapeyya okacārika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깨달음의 자전적 이야기가 끝난 뒤 큰 비유가 시작됩니다. 늪 가까이에 사는 사슴 무리와 그들을 해치려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안전한 길을 막고 잘못된 길을 열며 길들인 사슴을 미끼로 둡니다. 위험은 노골적인 덫만이 아니라 즐거워 보이는 길과 익숙한 미끼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앞에서 살핀 해로운 생각도 처음에는 매력적이지만 결국 지혜와 자유를 막는다는 점에서 같은 구조를 가집니다.

묵상

안전하고 아주 편안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음을 더 얽매는 길이나 미끼가 있나요? 당장의 강한 매력만 보지 않고 그 길이 끝내 어디로 이어지는지 한층 더 멀리 충분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면 사슴 무리는 마침내 파멸과 재난에 빠질 것이니라. 그러나 사슴 무리의 이익과 행복과 안전을 바라는 사람이 나타나, 행복으로 이끄는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열고 그릇된 길을 막으며 미끼 숫사슴을 치우고 미끼 암사슴을 없앤다고 하자. 그렇게 하면 사슴 무리는 마침내 자라고 번성할 것이니라.

Evañhi so, bhikkhave, mahāmigasaṅgho aparena samayena anayabyasanaṁ āpajjeyya. Tasseva kho pana, bhikkhave, mahato migasaṅghassa kocideva puriso uppajjeyya atthakāmo hitakāmo yogakkhemakāmo. So yvāssa maggo khemo sovatthiko pītigamanīyo taṁ maggaṁ vivareyya, pidaheyya kummaggaṁ, ūhaneyya okacaraṁ, nāseyya okacārikaṁ. Evañhi so, bhikkhave, mahāmigasaṅgho aparena samayena vuddhiṁ virūḷhiṁ vepullaṁ āpajjeyya.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두 번째 사람은 사슴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습니다. 안전한 길을 열고 위험한 길을 막으며 속이는 미끼를 치웁니다. 그러면 사슴 무리는 스스로 자라고 번성합니다. 좋은 가르침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스승은 제자를 대신해 걸을 수 없지만 길의 구조를 분명히 하고 장애를 없애 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생각을 두 갈래로 나누어 보여 준 것도 안전한 길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묵상

누군가의 삶을 대신 움직이려 하기보다 안전한 길을 열고 위험한 미끼를 치워 준 적이 있나요? 나 자신에게도 거센 강압보다 더 분명하고 따뜻하며 지속할 수 있는 환경과 방향을 마련해 줄 수 있을까요?

나는 뜻을 알리기 위해 이 비유를 들었느니라. 그 뜻은 이러하니라. 넓고 낮은 늪은 감각적 욕망을 가리키고, 큰 사슴 무리는 모든 존재를 가리키느니라. 그들을 해치고 불행과 위험에 빠뜨리려는 사람은 악한 마라를 가리키느니라.

Upamā kho me ayaṁ, bhikkhave, katā atthassa viññāpanāya. Ayaṁ cevettha attho—mahantaṁ ninnaṁ pallalanti kho, bhikkhave, kāmānametaṁ adhivacanaṁ. Mahāmigasaṅghoti kho, bhikkhave, sattānametaṁ adhivacanaṁ. Puriso anatthakāmo ahitakāmo ayogakkhemakāmoti kho, bhikkhave, mārassetaṁ pāpimato adhivaca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부처님이 비유의 대응 관계를 직접 풀어 줍니다. 늪은 감각적 쾌락, 사슴 무리는 모든 존재, 해치려는 사람은 악한 마라입니다. 늪은 물과 먹이를 주는 듯하지만 깊이 빠지면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감각적 즐거움도 그 자체보다 집착하여 자유를 잃을 때 위험한 터전이 됩니다. 마라는 바깥 존재로만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안전한 길을 가리고 미끼를 따르게 하는 마음의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비유가 보여 줍니다.

묵상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과 그 안에 깊이 빠져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의 경계는 어디인가요? 지금 나에게 안전한 길을 가리는 늪과 같은 오래된 습관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그릇된 길은 그릇된 여덟 가지 길을 가리키느니라. 그릇된 견해와 뜻과 말과 행동과 생계와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이니라. 미끼 숫사슴은 즐김과 탐욕을 가리키고, 미끼 암사슴은 무명을 가리키느니라.

Kummaggoti kho, bhikkhave, aṭṭhaṅgikassetaṁ micchāmaggassa adhivacanaṁ, seyyathidaṁ—micchādiṭṭhiyā micchāsaṅkappassa micchāvācāya micchākammantassa micchāājīvassa micchāvāyāmassa micchāsatiyā micchāsamādhissa. Okacaroti kho, bhikkhave, nandīrāgassetaṁ adhivacanaṁ. Okacārikāti kho, bhikkhave, avijjāyetaṁ adhivaca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잘못된 길도 여덟 영역으로 이루어집니다. 견해와 의도에서 말과 행동과 생계로 이어지고,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까지 잘못된 방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단지 집중력이 강하다고 바른 길은 아니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합니다. 두 미끼는 즐김과 탐욕, 그리고 무명입니다. 좋아서 달려가는 힘과 무엇이 위험한지 모르는 어둠이 함께 있을 때 존재들은 그릇된 길에 붙잡힙니다.

묵상

열심히 노력하고 깊이 집중하면서도 방향 자체가 잘못된 적은 없나요? 지금의 견해와 의도와 행동이 탐욕과 무명을 키우는지, 자유와 이해를 키우는지 삶의 전체 길로 점검해 볼 수 있을까요?

사슴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전을 바라는 사람은 완전하게 깨달은 여래를 가리키느니라. 행복으로 이끄는 안전하고 편안한 길은 성스러운 여덟 가지 길을 가리키나니, 바른 견해와 뜻과 말과 행동과 생계와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이니라. 나는 안전한 길을 열고 그릇된 길을 막았으며, 두 미끼를 치웠느니라.

Puriso atthakāmo hitakāmo yogakkhemakāmoti kho, bhikkhave, tathāgatassetaṁ adhivacanaṁ arahato sammāsambuddhassa. Khemo maggo sovatthiko pītigamanīyoti kho, bhikkhave, ariyassetaṁ aṭṭhaṅgikassa maggassa adhivacana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yā sammāsaṅkappassa sammāvācāya sammākammantassa sammāājīvassa sammāvāyāmassa sammāsatiyā sammāsamādhissa. Iti kho, bhikkhave, vivaṭo mayā khemo maggo sovatthiko pītigamanīyo, pihito kummaggo, ūhato okacaro, nāsitā okacārik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사슴을 살리는 사람은 여래이며, 안전한 길은 성스러운 여덟 가지 길입니다. 바른 견해에서 바른 집중까지 삶 전체가 한 방향으로 연결됩니다. 부처님은 자신이 그 길을 열고 그릇된 길을 막으며 탐욕과 무명이라는 미끼를 치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사슴을 대신 걸어 주지는 않습니다. 경의 앞부분에서 자신의 길을 자세히 보인 까닭도 제자들이 같은 안전한 길을 실제로 걸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묵상

바른 견해와 뜻부터 말과 행동과 생계와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까지 서로 온전히 이어져 있나요? 한 영역만 고치기보다 삶의 전체 방향을 안전한 길에 맞춘다면 어디부터 달라져야 할까요?

제자들의 이익을 바라고 연민하는 스승이 연민으로 해야 할 일을 나는 그대들에게 다 하였느니라. 여기 나무 밑과 빈 방이 있느니라. 명상하라. 게으르지 말라. 나중에 후회하는 이가 되지 말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가르침이니라.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수행자들은 기뻐하며 그 말씀을 받아들였다.

Yaṁ, bhikkhave, satthārā karaṇīyaṁ sāvakānaṁ hitesinā anukampakena anukampaṁ upādāya, kataṁ vo taṁ mayā. Etāni, bhikkhave, rukkhamūlāni, etāni suññāgārāni; jhāyatha, bhikkhave, mā pamādattha;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Ayaṁ vo amhākaṁ anusāsanī”ti.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unti.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부처님은 스승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밝히고, 제자들에게 실제로 명상하라고 당부합니다. 안전한 길을 열어 보여 주는 것까지가 스승의 몫이며 걷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나무 밑과 빈 방이라는 구체적인 수행 장소를 가리키고, 미루다가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실천하라고 합니다. 수행자들이 기쁘게 받아들이는 결말까지 포함하여 경 전체가 닫힙니다. 생각을 분별하는 가르침은 결국 직접 고요히 앉아 보는 실천으로 귀결됩니다.

묵상

길을 이해하는 데서 멈추고 실제로 마음을 바라보는 조용한 시간을 계속 미루고 있지는 않나요? 오늘 편안한 자리에서 몇 분이라도 생각의 두 방향을 살피는 일이 지금 가능한 첫걸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