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비유로 가르침을 찬탄하다

소나단다가 훌륭하다고 두 번 말하고 엎어진 것부터 등불까지 네 비유를 듦

소나단다가 말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여!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여, 마치 엎어진 것을 세우고 덮인 것을 열며 길 잃은 이에게 길을 보이고 어둠에 등불을 들어 눈 있는 이가 형상을 보게 하듯, 그와 같이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방식으로 가르침을 밝혀 주셨습니다.”

Evaṁ vutte, soṇadaṇḍo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abhikkantaṁ, bho gotama, abhikkantaṁ, bho gotama.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ṁ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ṁ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ṁ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ṁ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ṁ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디가 니까야 DN 4 소나단다경 (Soṇadaṇḍasutta)

배경

지혜의 설명이 끝나자 화자는 소나단다로 바뀝니다. 그는 고따마를 부르며 “훌륭합니다”를 두 번 되풀이합니다. 이어 엎어진 것을 세움, 덮인 것을 엶, 길 잃은 이에게 길을 보임, 어둠에 등불을 들어 눈 있는 이가 형상을 보게 함이라는 네 비유를 순서대로 듭니다. 세 번째 호칭은 비유를 시작하고, 마지막에는 고따마가 여러 방식으로 가르침을 밝혔다고 다시 주어를 명시합니다. 모호했던 계행과 지혜의 뜻이 바로 서고 드러나며 길과 시야를 얻었다는 찬탄입니다.

묵상

바로 세움·드러냄·길 안내·등불 가운데 이해가 분명해지는 경험과 가장 가까운 비유가 있나요? 특별한 깨달음을 요구하지 말고, 최근 조금 선명해진 한 점을 떠올려 볼까요? 선명한 것이 없으면 없다고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