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따마 존자여, 제가 수레를 타고 있을 때 내려서 존자께 절하면 그 대중이 나를 비난할 것입니다. 대중이 비난하면 명성이 줄고, 명성이 줄면 재산도 줄 것입니다. 우리 재산은 명성으로 얻었기 때문입니다. 고따마 존자여, 수레에서 제가 채찍 막대를 들면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를 수레에서 내린 것으로 여겨 주십시오. 고따마 존자여, 수레를 탄 채 제가 양산을 내리면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를 머리 숙여 절한 것으로 여겨 주십시오.”
Ahañceva kho pana, bho gotama, yānagato samāno yānā paccorohitvā bhavantaṁ gotamaṁ abhivādeyyaṁ, tena maṁ sā parisā paribhaveyya. Yaṁ kho pana sā parisā paribhaveyya, yasopi tassa hāyetha, yassa kho pana yaso hāyetha, bhogāpi tassa hāyeyyuṁ. Yasoladdhā kho panamhākaṁ bhogā. Ahañceva kho pana, bho gotama, yānagato samāno patodalaṭṭhiṁ abbhunnāmeyyaṁ, yānā me taṁ bhavaṁ gotamo paccorohanaṁ dhāretu. Ahañceva kho pana, bho gotama, yānagato samāno chattaṁ apanāmeyyaṁ, sirasā me taṁ bhavaṁ gotamo abhivādanaṁ dhāretū”ti.
디가 니까야 DN 4 소나단다경 (Soṇadaṇḍasutta)배경
같은 요청이 수레를 탄 상황으로 옮겨갑니다. 실제로 내려 절하면 대중이 비난하고, 비난에서 명성과 재산의 감소가 이어지며, 재산은 명성에 기대어 있다는 인과가 다시 온전히 나옵니다. 대신 채찍 막대를 드는 것은 수레에서 내림으로, 양산을 내리는 것은 머리 숙여 절함으로 받아 달라고 합니다. 앞의 합장·터번과 합쳐 네 신호가 되지만, 여기서는 수레의 두 신호만 다룹니다. 존경을 숨기는 행위를 이상으로 삼기보다, 사회적 지위에 매인 사람이 가능한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 가려는 장면입니다.
묵상
겉으로는 작은 몸짓이지만 당사자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신호가 있을까요? 다른 사람의 표현이 내 방식과 다르더라도, 그 안의 의도를 단정하지 않고 기다려 볼 수 있을까요? 마음이 머물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