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력은 힘차고 느슨하지 않았으며,
알아차림은 굳게 서서 흐려지지 않았느니라.
몸은 고요하고 긴장하지 않았으며 마음은 하나로 집중되었느니라.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것에서 멀어져,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며 멀어짐에서 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물렀느니라.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것이 고요해지자,
내면의 맑음과 하나 된 마음, 집중에서 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두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물렀느니라.
Āraddhaṁ kho pana me, bhikkhave, vīriyaṁ ahosi asallīnaṁ,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passaddho kāyo asāraddho, samāhitaṁ cittaṁ ekaggaṁ. So kho ahaṁ, bhikkhave,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āsiṁ.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cetaso ekodibhāvaṁ avitakkaṁ avicāraṁ samādhijaṁ pītisukhaṁ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ā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마음의 두 갈래를 오래 훈련한 결과 노력과 알아차림과 몸과 집중이 모두 준비됩니다. 그 바탕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깊은 집중으로 들어갑니다. 첫 단계에는 대상을 향한 생각의 움직임과 멀어짐에서 난 기쁨이 남아 있고, 둘째 단계에서는 그 생각마저 잦아들어 집중에서 난 기쁨과 행복과 내면의 맑음이 자리합니다. 생각을 분별하는 수행이 생각 없는 고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묵상
집중을 억지로 만들어 내려 하기 전에 노력과 알아차림과 몸의 고요가 함께 준비되어 있는지 살펴보았나요? 지금 이 순간에는 어느 조건을 가장 먼저 정성껏 돌봐야 한다고 느끼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쁨이 빛바래자 평정하고 알아차리며 분명히 알아,
몸으로 행복을 느끼는 셋째 깊은 집중에 머물렀느니라.
“평정하고 알아차리며 행복히 머문다”고
성스러운 이들이 말하는 경지였느니라.
즐거움과 괴로움, 기쁨과 슬픔이 사라져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고 평정과 알아차림이 맑은
넷째 깊은 집중에 머물렀느니라.
집중된 마음이 맑고 밝고 흠과 더러움이 없으며
유연하고 쓸모 있고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게 되자,
과거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느니라.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āsiṁ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ṁvedesiṁ, yaṁ taṁ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āsiṁ.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ṁ upekkhāsatipārisuddhiṁ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āsiṁ.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셋째 단계에서는 강한 기쁨이 잦아들고 평온과 알아차림 속의 행복이 남습니다. 넷째 단계에서는 즐거움과 괴로움, 기쁨과 슬픔을 넘어 평온과 알아차림이 완전히 맑아집니다. 부처님은 이 고요를 그 자체로 종착점이라 하지 않고 앎을 위한 유연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사용합니다. 첫 번째로 과거의 삶을 기억하는 방향에 마음을 기울이며 깨달음의 밤 세 가지 앎이 시작됩니다.
묵상
강렬한 기쁨이 줄어들면 좋은 상태를 잃었다고 느끼나요? 더 조용하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평온이 오히려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성숙한 마음일 수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나는 여러 과거의 삶을 그 모습과 세부까지 기억했느니라.
이는 밤의 첫 번째 시각에 얻은 첫 번째 앎이었느니라.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문 이에게 그러하듯,
무명은 무너지고 앎이 일어났으며
어둠은 무너지고 빛이 일어났느니라.
So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āmi.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pe…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āmi. Ayaṁ kho me, bhikkhave, rattiyā paṭhame yāme paṭham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첫 번째 앎은 여러 과거의 삶을 그 모습과 세부까지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를 밤의 첫 시각에 얻은 앎이라 말합니다. 이 경험의 핵심은 신기한 기억을 소유하거나 과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무명이 무너지고 앎이 일어나며 어둠이 무너지고 빛이 일어났다는 변화에 있습니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물며 닦은 고요가 마음을 밝히고, 자신의 긴 삶의 흐름을 분명히 보는 통찰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묵상
특별한 경험 자체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그것이 무명을 줄이고 삶을 더 분명히 보게 하는지 살피고 있나요? 내게 필요한 앎은 무엇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어둠을 밝히기 위한 것일까요?
마음이 다시 맑아지자, 존재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느니라.
맑고 인간을 뛰어넘는 눈으로
존재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았으며,
낮고 높고 아름답고 추하며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 가는 존재들이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이어지는 것을 알았느니라.
이는 밤의 가운데 시각에 얻은 두 번째 앎이었느니라.
무명은 무너지고 앎이, 어둠은 무너지고 빛이 일어났느니라.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문 이에게 그러하듯이.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ṁ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siṁ.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pe…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pe…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mi. Ayaṁ kho me, bhikkhave, rattiyā majjhime yāme du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두 번째 앎도 앞에서 말한 맑고 밝고 흠과 더러움이 없으며 유연하고 쓸모 있고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는 집중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 마음을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데 기울여, 존재들이 자신의 행위에 따라 서로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것을 봅니다. 첫 앎이 자신의 긴 삶의 흐름을 비추었다면 둘째 앎은 모든 존재가 행위와 결과의 질서 안에 있음을 보는 것으로 시야가 넓어집니다.
묵상
내 선택이 흔적 없이 사라진다고 여기나요, 아니면 마음과 관계에 방향을 남긴다고 느끼나요? 오늘의 작은 행위가 앞으로 어떤 성향과 결과를 키울지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까요?
맑고 밝고 흠과 더러움이 없으며,
유연하고 쓸모 있고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는 집중된 마음을
번뇌가 다하는 앎으로 기울였느니라.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느니라.
‘이것이 괴로움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
또한 번뇌와 그 일어남과 소멸과
그 소멸로 이끄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았느니라.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ṁ khay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siṁ.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Ime āsavā’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세 번째 앎은 번뇌를 끝내는 직접적인 지혜입니다. 부처님은 먼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같은 네 갈래로 번뇌와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과 길을 압니다. 특별한 능력의 열거가 괴로움의 원인과 소멸에 대한 통찰로 귀결됩니다. 이 경이 생각의 두 갈래에서 시작한 이유도 분명해집니다. 생각을 다스리는 목적은 더 나은 자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의 구조를 꿰뚫어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묵상
지금 겪는 괴로움을 빨리 없애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 원인과 소멸의 과정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괴로움과 번뇌를 네 갈래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차분히 살핀다면 무엇이 먼저 분명해질까요?
이렇게 알고 보자 나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와 존재를 향한 번뇌와 무명의 번뇌에서 풀려났느니라.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있었느니라.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알았느니라.
이는 밤의 마지막 시각에 얻은 세 번째 앎이었느니라.
무명은 무너지고 앎이, 어둠은 무너지고 빛이 일어났느니라.
부지런하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문 이에게 그러하듯이.
Tassa me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ittha,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ittha,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ittha,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ahos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abbhaññāsiṁ. Ayaṁ kho me, bhikkhave, rattiyā pacchime yāme ta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맛지마 니까야 MN 19 두 가지 생각경 (Dvedhāvitakkasutta) 배경
네 가지 진리와 번뇌의 구조를 있는 그대로 알자 마음이 세 번뇌에서 풀려납니다. 감각적 욕망, 계속 존재하려는 갈망, 무명입니다. 해탈 뒤에는 해탈했다는 분명한 앎과 더 할 일이 없다는 확인이 따릅니다. 부처님은 이를 밤의 마지막 시각에 얻은 세 번째 앎이라 말합니다. 처음 생각 하나의 결과를 살피던 훈련이 깊은 집중과 통찰을 거쳐 태어남과 괴로움의 완전한 끝으로 이어졌습니다.
묵상
작은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너무 사소해 보이나요? 한 번의 분별과 오랫동안 반복된 마음 훈련이 차곡차곡 쌓여 깊은 자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 여정에서 지금 나의 출발점은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