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바로 그 삼십일 번째 겁에 웻사부 세존, 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이가 세상에 출현하였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바로 이 행운의 겁에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이가 세상에 출현하였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바로 이 행운의 겁에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이가 세상에 출현하였느니라.”
Tasmiññeva kho, bhikkhave, ekatiṁse kappe vessabhū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Imasmiññeva kho, bhikkhave, bhaddakappe kakusandho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Imasmiññeva kho, bhikkhave, bhaddakappe koṇāgamano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디가 니까야 DN 14 대전기경 (Mahāpadānasutta)배경
시키의 삼십일 겁이라는 연대 다음에 웻사부도 “바로 그 삼십일 번째 겁”에 출현했다고 이어집니다. 이어 지시어가 “그”에서 “이”로 바뀌고, 까꾸산다와 꼬나가마나는 바로 이 행운의 겁에 놓입니다. 세 문장에는 호격과 깨달은 이의 세 자격, 세상에 출현했다는 서술이 각각 빠짐없이 반복됩니다. 같은 시간 범주를 공유하는 인물들을 묶되 각 문장을 보존하면, 이전 시대에서 현재 겁으로 넘어오는 비교의 경계가 선명해집니다.
묵상
같은 시대에 속했다는 말을 들으면 서로 다른 인물의 삶까지 하나로 뭉뚱그리게 되나요? 공통된 시간 배경을 인정하면서도 각 이름과 삶을 따로 볼 수 있는지 세 문장을 천천히 읽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