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의 세 제자 모임

시키에게 세 차례 열린 제자 모임의 인원과 모두 번뇌가 다했다는 공통점을 밝힘

“수행자들이여, 시키 세존, 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이에게 제자들의 모임이 세 번 있었느니라. 제자들의 한 모임은 수행자 십만 명, 한 모임은 수행자 팔만 명, 한 모임은 수행자 칠만 명이었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시키 세존, 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이에게 이 세 제자 모임이 있었으며, 모두가 번뇌가 다한 이들이었느니라.”

Sikh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tayo sāvakānaṁ sannipātā ahesuṁ. Eko sāvakānaṁ sannipāto ahosi bhikkhusatasahassaṁ, eko sāvakānaṁ sannipāto ahosi asītibhikkhusahassāni, eko sāvakānaṁ sannipāto ahosi sattatibhikkhusahassāni. Sikh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ime tayo sāvakānaṁ sannipātā ahesuṁ sabbesaṁyeva khīṇāsavānaṁ.

디가 니까야 DN 14 대전기경 (Mahāpadānasutta)

배경

위빳시 다음에는 시키의 제자 모임이 같은 방식으로 설명됩니다. 모임은 세 번이며 인원은 십만·팔만·칠만 명의 순서입니다. 세 수를 줄이거나 순서를 바꾸면 각 모임의 규모가 달라집니다. 시작과 결론에서 시키의 이름과 완전한 깨달음의 자격, 수행자들을 부르는 말이 각각 반복되고, 세 모임 모두 번뇌가 다한 이들로 이루어졌다는 조건도 유지됩니다. 되풀이되는 틀 안에서 인물과 수량만 달라져 시대별 승가의 구체적인 모습을 기억하게 합니다.

묵상

비슷한 설명이 이어질 때 달라지는 세부를 놓치고 모두 같은 것으로 읽지는 않나요? 십만·팔만·칠만이라는 순서를 천천히 따라가며, 반복 속 차이를 알아차리는 마음은 어떤가요? 그 차이를 한동안 느껴볼 수 있나요?